'나는 아니야' 그 절규의 심리학
미국 하원의원 에릭 스왈웰이 성추행 의혹에 휩싸여 의원직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이의 추락은 늘 우리에게 복잡한 감정을 안겨줍니다. 특히나 '성추문'이라는 꼬리표는 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필자 역시 수많은 상담실에서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만나왔습니다. 그들의 목소리 뒤편에는 과연 어떤 심리가 숨어 있었을까요?
심리학에서 우리는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불안이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적인 심리 전략을 '방어기제'라고 부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자아가 현실의 고통스러운 측면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러한 기제들을 사용한다고 보았습니다. 마치 외부의 적이 침입할 때 성벽을 높이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무서운 상황에서 눈을 가리거나 '아니야, 아니야' 하고 귀를 막는 행동도 일종의 방어기제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더 복잡하고 정교한 형태로 나타나지요.
스왈웰 의원과 같은 인물들이 의혹에 직면했을 때, 그들은 아마도 여러 방어기제를 동시에 작동시켰을 것입니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이 바로 '부정'입니다. 부정은 고통스러운 현실 자체를 아예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시도이지요. 눈앞에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그럴 리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마치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는데도 '이건 꿈이야'라고 중얼거리는 승객과 같습니다. 일시적으로 고통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정'과 함께 자주 나타나는 것이 바로 '합리화'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어 정당화하는 것이지요.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했다', '상대방도 원했다'와 같은 논리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처럼, 인간은 자신의 행동과 신념 사이에 모순이 생길 때, 그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신념이나 행동을 바꾸거나, 아니면 외부 상황을 왜곡해서라도 일관성을 유지하려 합니다. 성추행 의혹에 대한 '아니오'라는 반응은 이러한 인지적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정말로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처음에는 무의식적인 '부정'으로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증거가 쌓이면, 의식적인 '합리화'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도가니'에서 우리는 성추행 가해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악행을 '일상'으로 여기고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치부하는지 목격했습니다. 그들에게 피해자의 고통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자신들의 안위만이 중요했던 것이지요. 이것은 극단적인 '부정'과 '합리화'의 예시입니다.
이러한 방어기제들은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심리적 장치입니다. 다만 그 강도와 사용하는 상황이 다를 뿐입니다. 어쩌면 스왈웰 의원도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파급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막을 쳤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것이 그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만, 인간 본연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용기일 것입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는 것만큼 고통스럽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장의 시작이 아닐까요?
부끄러움을 마주하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