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5월 3일 일요일
발행 2026-05-23
NYTIMES

강대국 심리의 딜레마: '영혼'은 어디에 있는가

뉴욕타임스 사설은 미국이 이란을 둘러싼 복잡한 국제 문제에 직면하여 자국의 명성, 오랜 동맹, 혹은 국가의 '영혼' 중 하나를 잃을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습니다. 마치 한 개인이 피할 수 없는 난관 앞에 서서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시험받는 것처럼, 국가 또한 그런 중대한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린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때로는 그 선택이 개인의 정체성을 뒤흔들 만큼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은 어떻게 이런 '영혼'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일까요? 필자는 이 지점에서 '집단사고'라는 개념을 떠올립니다.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집단이 응집력을 유지하려는 압력 때문에 비판적 사고를 중단하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현상을 '집단사고'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쿠바의 피그스만 침공 실패 사례를 분석하며, 존 F. 케네디 행정부의 고위 참모들이 반대 의견을 억누르고 만장일치로 보이는 결정을 내렸던 과정을 밝혀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견을 제시하는 것을 '배신'처럼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한 회사의 임원들이 모두가 내심 반대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침묵하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결국 모두가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국가의 외교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이러한 '집단사고'의 함정은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강대국의 리더들이 자신들의 결정이 가져올 장기적인 파급 효과나 도덕적 측면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고, 오직 단기적인 이익이나 내부의 결속만을 강조하다 보면, 결국 '영혼'을 잃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국가 간의 갈등 이면에는 '투사적 동일시'라는 심리적 역동이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이 제시한 '투사적 동일시'는 자신의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이나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하고, 그 타인이 그 투사된 감정을 실제로 경험하고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무의식적인 과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분노'나 '두려움'을 직면하기 어려워할 때, 부모에게 일부러 심술궂게 굴어 부모가 실제로 화를 내도록 만듭니다. 그리고는 '역시 부모님은 나를 미워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무의식적 투사를 현실로 확인하는 것이지요.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역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국가가 자신의 내부에 있는 '폭력성'이나 '불안정성'을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울 때, 특정 상대국에 그것을 '투사'하고 그 상대국이 실제로 위협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국이 그 투사에 반응하여 행동하면, '저들이 역시 문제였다'고 확신하며 자신의 투사를 정당화하는 것이지요. 뉴욕타임스 사설이 언급한 '영혼'을 잃는다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투사적 동일시'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본질이 아니라 우리 안의 '내 안의 괴물'을 상대에게 덧씌우고 그 환영과 싸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도덕적 기준이나 가치를 저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상대의 본질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 안의 두려움과 그림자를 그들에게 투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비단 강대국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에서도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필자 또한 임상 현장에서 환자분들이 자신의 고통을 주변 사람들에게 투사하며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모습을 자주 목격합니다. 그 투사를 인식하고 거두어들이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곤 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든 개인적 차원에서든, 우리는 외부의 적과 싸우기 전에 먼저 우리 내부의 '영혼'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으려 하는지, 그 선택의 순간에 우리의 행동이 정말로 우리의 가치를 대변하는지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오직 외부만을 향해 칼을 겨눈다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NYTIMES

기대와 실망, 그 사이의 심리

보스턴 셀틱스 농구팀의 올 시즌은 참으로 극적이었습니다. 시즌 초 누구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팀이 연승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하자, 팬들은 물론이고 팀 내부에서도 우승이라는 장밋빛 기대를 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아쉬운 패배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필자는 이 스포츠 경기 흐름 속에서 우리의 일상에서도 흔히 마주하는 마음의 패턴을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다가,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모든 것'을 기대하게 되는 그 심리 말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극단적인 기대를 오가는 것일까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인지' 방식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필자는 이 현상을 볼 때 가장 먼저 '인지왜곡'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곤 합니다. 인지왜곡이란, 특정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왜곡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앨런 벡(Aaron Beck) 박사가 창시한 인지행동치료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우리는 종종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과거 경험에 비추어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 혹은 왜곡해서 받아들이곤 합니다. 예를 들어, 셀틱스의 팬들이나 선수들이 연승 가도에 있을 때 '우리는 무적이다', '이번엔 우승할 수밖에 없다'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하나의 인지왜곡일 수 있습니다. 몇 번의 승리가 모든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님에도,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어 합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시험을 잘 본 날이면 '나는 천재인가 봐'라고 생각하다가 다음 시험에서 망치면 '나는 바보야'라고 좌절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지는 종종 '흑백논리'나 '과잉 일반화'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인지왜곡은 비단 개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집단 전체가 특정 방향으로 사고를 몰아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집단사고'라고 부릅니다. 사회심리학자 어빙 제니스(Irving Janis)는 집단사고를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합리적인 의사결정보다 만장일치에 대한 압력을 더 중요하게 여겨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결정을 내리는 현상'으로 정의했습니다. 셀틱스의 사례에서 볼 때, 팀이 연승을 이어갈 때 팀원들 사이에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때 혹시라도 불안감이나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팀원이 있다면, 집단의 조화를 깨뜨린다는 암묵적인 압력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과거 미국의 '피그만 침공' 실패나 '챌린저호 폭발' 사고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집단 내 비판적 사고가 억압되고 잘못된 낙관론에 휩싸여 중요한 경고 신호를 무시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필자 또한 학회에서 발표 준비를 할 때, 동료들 모두가 '이 아이디어가 최고다'라고 말하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 '혹시 이런 문제점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입 밖에 내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집단의 목소리에 휩쓸려 자신의 비판적 사고를 잠재우곤 합니다. 결국, 셀틱스의 사례는 우리에게 '기대'라는 감정이 얼마나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적절한 기대는 동기 부여가 되지만, 과도한 기대는 인지왜곡과 집단사고를 불러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더 큰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필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 앞에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기를 권합니다. '나는 지금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기대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대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아닌, 때론 현실을 가리는 안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