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5월 4일 월요일
발행 2026-05-23
NYTIMES

‘불안’이라는 그림자: 더 위험한 세상에 대비하는 우리의 마음

유럽 각국이 경제 격변 속에서 '더 위험한 세상'에 대비하며 민방위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이미 20만 명의 시민이 군사 훈련에 참여했고, 독일은 재난 대비 계획을 점검하며 비상식량과 물품 비축을 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준비는 마치 다가올 폭풍을 예감하고 창문을 걸어 잠그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우리 인간이 가진 깊은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 앞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이 불안은 때로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 '불안'은 특정한 대상 없이 느껴지는 막연한 두려움과 긴장을 의미합니다. 반면 '두려움'은 명확한 대상, 예를 들어 맹수나 높은 곳에 대한 반응이지요. 유럽인들이 대비하는 '더 위험한 세상'은 어쩌면 구체적인 적이 아니라, 불확실성 그 자체에서 오는 '불안'일지도 모릅니다.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의미의 상실'에서 오는 '실존적 공허'를 경험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이 더 위험해진다는 인식은 우리가 붙잡고 있던 삶의 의미와 안정감을 흔들고, 결국 깊은 '실존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작은 새가 혹독한 겨울을 앞두고 쉼 없이 먹이를 모으고 둥지를 보수하듯, 우리도 알 수 없는 위협 앞에서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준비하며 불안을 해소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준비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올까요? 심리학에서는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전략들을 '방어기제'라고 부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방어기제'가 자아를 위협하는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정'은 위험한 현실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이고, '합리화'는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을 그럴듯한 이유로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유럽 각국의 대비는 어쩌면 '현실적 준비'라는 '합리화'의 탈을 쓴 '집단적 방어기제'일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인지 왜곡'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지 치료의 창시자 아론 벡은 개인이 현실을 비합리적으로 해석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는 사고방식을 '인지 왜곡'이라고 보았습니다. '파국화'는 작은 문제도 최악의 시나리오로 연결하는 것이고, '흑백논리'는 세상을 오직 안전하거나 위험한 두 가지로만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더 위험한 세상'이라는 전제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정보를 '위험의 증거'로 해석하게 만드는 '확증 편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냉전 시대, 핵전쟁의 공포 속에서 많은 사람이 지하 벙커를 짓고 비상 훈련을 하던 모습은 이러한 '집단적 불안'과 '인지 왜곡'이 어떻게 사회를 지배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와 그에 대한 인간의 '방어기제'가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파괴적일 수 있는지 블랙 코미디로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위험에 대비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한 준비'가 '안전 강박'으로 변질될 때, 우리는 진정한 위험보다 '두려움 자체'에 갇히게 됩니다. 과도한 대비는 오히려 '자기 실현적 예언'처럼 부정적인 미래를 현실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합리적인 대비이고, 어디부터가 불안이 만들어낸 '환상'일까요? 아마도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현실 검증'이라는 냉철한 시각이 필요할 것입니다.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위협의 실체를 파악하고,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하는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는 자세 말입니다. 필자 역시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종종 마음이 흔들리곤 합니다. 그때마다 필자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내보려 노력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들어갈 세상은 바로 지금, 우리의 작은 행동과 생각에 달려있지 않을까요?
두려움의 그림자 속에서도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NYTIMES

좌절 뒤의 그림자, 희생양의 탄생

미국 프로농구(NBA) 올랜도 매직이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하자마자 자말 모슬리 감독을 경질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 시즌의 노력이 한순간의 패배로 인해 감독의 자리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결국 이별을 고하게 된 것이죠. 패배의 순간, 우리는 늘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희생양 메커니즘'을 떠올렸습니다. 희생양 메커니즘이란 집단이 겪는 갈등이나 위기, 그리고 그로 인한 불안과 좌절감을 특정 개인이나 소수 집단에게 전가하여 해소하려는 심리적 현상을 말합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그의 저서에서 인류의 역사가 이 희생양 메커니즘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집단 내의 폭력과 갈등이 특정 대상을 향해 집중될 때, 그 집단은 일시적인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이죠. 마치 고대 사회에서 공동체의 불운을 특정 제물에게 돌려 바치던 의식과도 같습니다. 실패의 아픔을 겪은 팬들과 구단에게 감독은 팀의 좌절감을 투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원인으로 환원하고 싶어 하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이러한 현상 뒤에는 '투사적 동일시'라는 심리적 역동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이 제시한 이 개념은, 개인이 자신의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이나 감정(예: 무능감, 분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투사'하고, 그 타인이 마치 그 감정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투사된 감정을 타인이 실제로 경험하고 행동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투사하는 주체는 자신의 내면에서 그 감정을 제거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올랜도 매직 팬들과 구단은 플레이오프 탈락의 고통스러운 감정, 즉 '우리의 실패'라는 무능감과 좌절감을 감독에게 투사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감독을 해고함으로써, 그들은 팀의 실패가 마치 감독 개인의 무능함 때문인 것처럼 '동일시'하고, 자신들의 내면에서 실패의 감정을 덜어내려 했을 것입니다. 이는 일시적으로는 집단의 불안을 가라앉히고 '우리는 문제가 없다'는 착각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감독 한 사람의 경질로 팀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단기적인 감정 해소는 될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집단이 자신의 실패와 고통을 외부의 특정 대상에게 전가하는 동안, 스스로의 문제점을 직면하고 성찰할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두운 방에서 그림자를 탓하며 빛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안의 문제, 즉 팀의 전술적 한계나 선수들의 심리적 압박감, 구단의 지원 부족 등은 희생양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죠. 필자 역시 살면서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이나 외부 환경을 탓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말 이 사람 때문일까?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그 질문은 언제나 불편했지만, 결국은 문제를 직시하고 더 나은 해결책을 찾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인 좌절이든 사회적인 문제든, 너무나 쉽게 희생양을 찾는 태도는 진정한 성장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혹 우리 안에도 쉽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마음은 없는지,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희생양 뒤에 숨은 진짜 문제를 직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