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그림자: 더 위험한 세상에 대비하는 우리의 마음
유럽 각국이 경제 격변 속에서 '더 위험한 세상'에 대비하며 민방위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이미 20만 명의 시민이 군사 훈련에 참여했고, 독일은 재난 대비 계획을 점검하며 비상식량과 물품 비축을 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준비는 마치 다가올 폭풍을 예감하고 창문을 걸어 잠그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우리 인간이 가진 깊은 '불안'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 앞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이 불안은 때로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 '불안'은 특정한 대상 없이 느껴지는 막연한 두려움과 긴장을 의미합니다. 반면 '두려움'은 명확한 대상, 예를 들어 맹수나 높은 곳에 대한 반응이지요. 유럽인들이 대비하는 '더 위험한 세상'은 어쩌면 구체적인 적이 아니라, 불확실성 그 자체에서 오는 '불안'일지도 모릅니다.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의미의 상실'에서 오는 '실존적 공허'를 경험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이 더 위험해진다는 인식은 우리가 붙잡고 있던 삶의 의미와 안정감을 흔들고, 결국 깊은 '실존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작은 새가 혹독한 겨울을 앞두고 쉼 없이 먹이를 모으고 둥지를 보수하듯, 우리도 알 수 없는 위협 앞에서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준비하며 불안을 해소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준비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올까요? 심리학에서는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전략들을 '방어기제'라고 부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방어기제'가 자아를 위협하는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정'은 위험한 현실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이고, '합리화'는 불안을 야기하는 상황을 그럴듯한 이유로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유럽 각국의 대비는 어쩌면 '현실적 준비'라는 '합리화'의 탈을 쓴 '집단적 방어기제'일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인지 왜곡'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지 치료의 창시자 아론 벡은 개인이 현실을 비합리적으로 해석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는 사고방식을 '인지 왜곡'이라고 보았습니다. '파국화'는 작은 문제도 최악의 시나리오로 연결하는 것이고, '흑백논리'는 세상을 오직 안전하거나 위험한 두 가지로만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더 위험한 세상'이라는 전제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정보를 '위험의 증거'로 해석하게 만드는 '확증 편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냉전 시대, 핵전쟁의 공포 속에서 많은 사람이 지하 벙커를 짓고 비상 훈련을 하던 모습은 이러한 '집단적 불안'과 '인지 왜곡'이 어떻게 사회를 지배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와 그에 대한 인간의 '방어기제'가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파괴적일 수 있는지 블랙 코미디로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위험에 대비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한 준비'가 '안전 강박'으로 변질될 때, 우리는 진정한 위험보다 '두려움 자체'에 갇히게 됩니다. 과도한 대비는 오히려 '자기 실현적 예언'처럼 부정적인 미래를 현실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합리적인 대비이고, 어디부터가 불안이 만들어낸 '환상'일까요? 아마도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현실 검증'이라는 냉철한 시각이 필요할 것입니다.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위협의 실체를 파악하고,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하는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는 자세 말입니다.
필자 역시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종종 마음이 흔들리곤 합니다. 그때마다 필자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내보려 노력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들어갈 세상은 바로 지금, 우리의 작은 행동과 생각에 달려있지 않을까요?
두려움의 그림자 속에서도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