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5월 5일 화요일
발행 2026-05-23
NYTIMES

조용한 관찰자, 그 가면 뒤의 심리

메트로신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임상심리학자 진성오입니다. '메타'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세계적인 패션 행사, 메트 갈라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이 행사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검은색 수트를 입고 '조용히' 참석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셀럽들이 자신을 과시하기 바쁜 자리에서, 그의 이러한 차분한 행보는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는 왜 그토록 조용했을까요? 필자는 그의 '조용함' 속에서 흥미로운 심리적 장치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특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을 요구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이처럼 화려한 사교의 장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할'을 연기합니다. 캐나다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이를 '인상 관리' 혹은 '자아 연극론'으로 설명했죠. 우리는 마치 무대 위의 배우처럼,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을 연출하고, 그에 맞는 가면을 씁니다. 저커버그가 메트 갈라에서 보여준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 역시, 어쩌면 그가 의도적으로 연출하고자 했던 하나의 '인상 관리' 전략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화려함 속에서 돋보이는 차분함, 그것이야말로 그가 전하고자 했던 가장 강력한 메시지였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의 조용함이 단순히 의도된 연출일 뿐이었을까요? 어쩌면 그것은 그만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는 개인이 불안이나 위협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다양한 심리적 전략들을 '방어기제'라 불렀습니다. 이는 마치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등껍질 속으로 몸을 숨기는 거북이와 같습니다. 저커버그의 '조용함'은 어쩌면 그에게는 낯설고 불편할 수 있는 화려한 사교의 장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철수' (withdrawal) 방어기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감정적인 동요 없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지성화' (intellectualization)의 형태로 나타났을 수도 있고요. 그는 그곳의 화려함에 휩쓸리기보다는, 마치 사회학자가 현장을 관찰하듯, 한 발짝 떨어져 조용히 그 모든 것을 관조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가면을 쓰고 벗습니다. 때로는 활기차게 자신을 드러내고, 때로는 조용히 뒤로 물러서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감정적 경험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또 원하는 방식으로 소통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입니다. 메트 갈라의 마크 저커버그처럼, 우리도 종종 불편한 상황에서 '조용함'이라는 방어막 뒤로 숨어버리곤 하지 않던가요? 아니면 너무나 압도적인 상황 앞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 애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우리 내면의 섬세한 심리적 작동 방식들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필자 역시 젊은 시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면 의도치 않게 말이 없어지고 주변을 관찰하는 데 급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낯을 가린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 역시 일종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방어기제'이자 동시에 '정보 수집'을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반응합니다. 결국, 저커버그의 '조용한' 참석은 그가 의도했든 안 했든, 우리에게 '보여지는 나'와 '진정한 나'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인간의 복잡한 심리적 노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든, 일상의 작은 공간에서든,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상 관리'를 하고,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그 '조용함'이야말로 가장 큰 목소리였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조용함'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NYTIMES

숨 막히는 공포, 마음의 방어막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한타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이 '숨을 들이쉴 수 없다'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생명과 직결된 호흡이 곤란해지는 경험은 상상만으로도 우리에게 깊은 불안감을 안겨줍니다. 필자는 이 기사를 접하며,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공포, 그리고 그 공포 앞에서 우리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고 스스로를 지켜내려 하는지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되었습니다.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뇌의 가장 깊은 곳, 즉 '파충류 뇌'라고도 불리는 뇌간과 변연계 영역을 즉각적으로 활성화시킵니다. 이곳은 생존과 직결된 원초적인 반응을 담당하는 곳으로, 위협에 처했을 때 '투쟁-도피-정지 반응'(fight-flight-freeze response)을 일으킵니다. 한타바이러스 환자들이 겪는 호흡 곤란은 단순히 신체적인 고통을 넘어, 생존 본능을 뿌리째 흔드는 '트라우마'적 사건으로 각인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트라우마'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스트레스 사건을 경험한 후 발생하는 심리적 외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고통스러운 기억을 넘어, 뇌 기능과 신경계에 변화를 일으켜 지속적인 불안, 공황, 회피 반응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이전에 우리는 생존 그 자체의 의미를 붙들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이런 압도적인 공포 앞에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를 작동시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부정'(denial)입니다. 처음에는 '설마 내가?', '잠시 숨이 가쁜 것이겠지' 하고 자신의 상태를 애써 외면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눈을 가리면 위험이 사라진다고 믿는 것처럼, 현실의 위협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인 셈입니다. 이러한 부정은 일시적으로는 고통을 완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적절한 대처를 방해하여 더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극심한 불안은 '인지 왜곡'(cognitive distortion)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분명 죽을 거야'와 같은 '파국화' 사고나, '의사들이 내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해'와 같은 '정신적 필터링'을 통해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에런 벡이 제시한 인지 치료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왜곡된 사고 패턴을 인지하고 수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존이 걸린 위기 상황에서는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원초적인 감정이 앞서기 마련입니다. 결국 한타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이 겪는 숨 막히는 고통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슬픈 거울과 같습니다. 몸이 보내는 위협 신호 앞에서 마음은 '부정'이라는 방어막을 치고, 때로는 '인지 왜곡'으로 현실을 걸러내려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살아남고 싶다'는 원초적인 외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아마도 우리 모두는 살면서 한 번쯤은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절망감이나 좌절감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어떤 방어막을 쳤고, 어떤 생각의 왜곡을 겪었을까요? 우리 마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고, 스스로를 보듬을 힘을 길러주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두려움 앞에서 당신의 마음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