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5월 6일 수요일
발행 2026-05-23
AP

승리 강박,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는 심리

미국에서 선거구 재조정 문제를 두고 '승자 독식'의 정치적 대결이 심화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려는 시도가 격화되면서, 이는 단순히 표 계산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하던 놀이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함께 즐기려 시작했던 게임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서로를 비난하고 결국엔 관계마저 틀어지곤 했던 기억 말입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승리'에 집착하고, 때로는 그것을 위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걸까요? 아마도 그 이면에는 인간 본연의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와 '집단 내 합의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숨어있을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집단사고'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1972년 자신의 저서에서 이 개념을 처음 소개했습니다. 그는 쿠바의 피그스만 침공 실패 사례를 분석하며, 고도로 응집력 있는 집단이 외부의 비판적 정보나 대안적 사고를 억압하고, 만장일치라는 환상 속에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죠. 집단 내에서 '우리'라는 소속감이 너무 강해지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마치 '배신'처럼 느껴지거나, '우리 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결국, 개인의 합리적 판단보다는 집단의 결속을 우선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도 '집단사고'의 흔적은 많습니다.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결정할 때, 모두가 '네'라고 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 혹은 학교 동아리에서 특정 활동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다수의 의견에 묻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정치적 대결에서 '우리 편'의 주장이 아무리 비합리적으로 보여도, 그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상대편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태도 역시 이러한 '집단사고'의 폐해가 아닐까요. '승자 독식'이라는 목표 아래, 집단 내의 다양한 목소리는 억압되고, 오직 승리만을 위한 전략들이 '합리적'으로 포장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집단사고'는 종종 '인지왜곡'과 '합리화'라는 심리적 기제와 결합하여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인지왜곡'이란 객관적인 사실을 주관적으로, 그리고 비합리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을 말합니다. 인지치료의 대가인 아론 벡(Aaron Beck)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오류가 생기면 감정이나 행동에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흑백논리'나 '확증 편향'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인지왜곡'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대결에서 '우리 편은 항상 옳고, 저들은 항상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흑백논리'에 해당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기존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확증 편향'은 '집단사고'를 더욱 공고히 만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왜곡된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을 그럴듯한 이유로 정당화하는 것이 바로 '합리화'라는 '방어기제'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제시한 '방어기제' 중 하나인 '합리화'는 우리가 불편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회피하고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선거구 재조정을 통해 '우리 편'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객관적으로 '기득권 유지'나 '권력 확장'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국가 발전'이나 '국민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다면, 이는 전형적인 '합리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때로는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지왜곡'과 '합리화'의 늪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승리'만을 쫓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때로는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지금 '집단사고'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나의 판단이 '인지왜곡'이나 '합리화'로 얼룩져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필자 역시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열성적으로 활동하다 보면, 어느새 비판적 사고를 잃고 '우리 편'의 논리만을 맹목적으로 따랐던 부끄러운 경험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는 그것이 옳고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얼마나 위험하고 편협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곤 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리 편'의 승리만을 외치는 대신,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확증 편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경향신문 사회

전쟁의 규칙이 흔들릴 때, 우리는 무엇을 부정하는가?

최근 보도에 따르면, 제네바협약 가입 60주년을 맞아 전쟁의 참상이 다시금 조명되었습니다. 폭격으로 파괴된 예멘의 건물 잔해 사이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콩고민주공화국의 열 살 소년은 머리에 총상을 입고 말을 잃었다는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전쟁의 규칙마저 흔들리며 민간인, 특히 어린이가 공격 대상이 되는 현실은 우리를 깊은 탄식에 잠기게 합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인간의 마음이 과연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하곤 합니다. 때로는 너무나 끔찍한 현실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묘한 방어막을 치기도 합니다. 이 방어막 뒤에 숨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으려 하는 걸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방어막을 '방어기제'라고 부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면서도 강력한 것이 바로 '부정'과 '합리화'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나 위협에 직면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심리적 과정이 작동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치 눈앞의 거대한 위협을 보지 않으려는 듯 눈을 감아버리는 아이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이러한 '부정'과 '합리화'를 자주 목격합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 '우리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위다'와 같은 말들로 잔혹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합리화하려 합니다. 이런 식의 '집단적 부정'은 전쟁의 비극을 더욱 심화시키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도 알게 모르게 이러한 '집단 무의식'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부정'과 '합리화'가 현실을 일시적으로 가릴 수는 있어도, 그 고통의 흔적까지 지울 수는 없습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비극이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깊은 '트라우마'를 짐작하게 합니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끔찍한 사건을 겪는 것을 넘어, 그 사건이 개인의 정신과 신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임상심리학자 베셀 반 데어 콜크는 '몸은 기억한다'는 책에서 트라우마가 어떻게 신체적, 정신적 증상으로 나타나며 삶을 지배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전쟁 트라우마는 생존자들에게 공포, 불안, 악몽, 무력감,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불신을 남깁니다. 콩고민주공화국 소년이 말을 잃은 것 또한 극심한 트라우마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폐허 속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상화된 비정상'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아마도 삶의 유일한 방식으로 그 고통을 견디고 있을 것입니다. 이토록 참혹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마도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이 현실을 직면하는 용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의 작은 불씨를 찾아내는 노력일 것입니다. 인간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회복 탄력성'을 발휘하며 다시 일어서는 존재입니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희생자들을 돕는 이들, 평화를 외치는 이들, 그리고 폐허 속에서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이들의 모습은 바로 그러한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지키는 행위가 아닐까요? 우리 안의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 필요한 때입니다. 필자 역시 이 글을 쓰면서 깊은 무력감과 함께, 동시에 심리학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됩니다. 심리학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 이러한 거대한 사회적 비극 속에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고, 또 어떻게 회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탐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비극의 증인이자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잔인한 현실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