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강박,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는 심리
미국에서 선거구 재조정 문제를 두고 '승자 독식'의 정치적 대결이 심화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려는 시도가 격화되면서, 이는 단순히 표 계산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하던 놀이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함께 즐기려 시작했던 게임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서로를 비난하고 결국엔 관계마저 틀어지곤 했던 기억 말입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승리'에 집착하고, 때로는 그것을 위해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걸까요? 아마도 그 이면에는 인간 본연의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욕구'와 '집단 내 합의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숨어있을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집단사고'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1972년 자신의 저서에서 이 개념을 처음 소개했습니다. 그는 쿠바의 피그스만 침공 실패 사례를 분석하며, 고도로 응집력 있는 집단이 외부의 비판적 정보나 대안적 사고를 억압하고, 만장일치라는 환상 속에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죠. 집단 내에서 '우리'라는 소속감이 너무 강해지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마치 '배신'처럼 느껴지거나, '우리 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결국, 개인의 합리적 판단보다는 집단의 결속을 우선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도 '집단사고'의 흔적은 많습니다.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결정할 때, 모두가 '네'라고 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 혹은 학교 동아리에서 특정 활동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다수의 의견에 묻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정치적 대결에서 '우리 편'의 주장이 아무리 비합리적으로 보여도, 그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상대편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태도 역시 이러한 '집단사고'의 폐해가 아닐까요. '승자 독식'이라는 목표 아래, 집단 내의 다양한 목소리는 억압되고, 오직 승리만을 위한 전략들이 '합리적'으로 포장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집단사고'는 종종 '인지왜곡'과 '합리화'라는 심리적 기제와 결합하여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인지왜곡'이란 객관적인 사실을 주관적으로, 그리고 비합리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을 말합니다. 인지치료의 대가인 아론 벡(Aaron Beck)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오류가 생기면 감정이나 행동에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흑백논리'나 '확증 편향'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인지왜곡'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대결에서 '우리 편은 항상 옳고, 저들은 항상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흑백논리'에 해당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기존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확증 편향'은 '집단사고'를 더욱 공고히 만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왜곡된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을 그럴듯한 이유로 정당화하는 것이 바로 '합리화'라는 '방어기제'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제시한 '방어기제' 중 하나인 '합리화'는 우리가 불편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회피하고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선거구 재조정을 통해 '우리 편'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객관적으로 '기득권 유지'나 '권력 확장'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국가 발전'이나 '국민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다면, 이는 전형적인 '합리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 때로는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지왜곡'과 '합리화'의 늪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승리'만을 쫓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때로는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지금 '집단사고'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나의 판단이 '인지왜곡'이나 '합리화'로 얼룩져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필자 역시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열성적으로 활동하다 보면, 어느새 비판적 사고를 잃고 '우리 편'의 논리만을 맹목적으로 따랐던 부끄러운 경험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는 그것이 옳고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얼마나 위험하고 편협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곤 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리 편'의 승리만을 외치는 대신,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확증 편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