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라는 이름 뒤의 그림자

미국 법무부가 UCLA 의과대학 입학 전형에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들에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오랜 역사와 권위를 가진 교육기관에서 이런 일이 불거졌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정함'이라는 가치 앞에서 취약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합니다. 과연 우리는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떤 '편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두 가지 심리적 현상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왜곡하는 '인지왜곡'이고, 다른 하나는 불편한 진실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입니다.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우리는 스스로는 '공정하다'고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특정 집단에게 불이익을 주는 상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먼저 '인지왜곡'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인지왜곡이란 말 그대로 우리의 생각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특정 방식으로 '왜곡'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인지치료의 선구자인 아론 벡(Aaron Beck) 박사는 우리의 감정과 행동이 객관적 현실보다는 우리가 그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보았습니다. 마치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필터'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죠. 이 필터는 우리의 경험, 가치관, 그리고 때로는 무의식적인 편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번 UCLA 의대 사례를 보면서, 아마도 입학 사정관들 내부에 특정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택적 지각'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추측을 해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인종은 '학업 성취도는 높지만 리더십은 부족할 것'이라거나, 다른 인종은 '다양성을 위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그룹'이라는 식의 무의식적 인지 필터가 작동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스스로는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선발하려는 '선의'를 가졌다고 믿었을지 모르지만, 그 선의가 특정 인지왜곡과 만나면서 의도치 않은 차별로 이어졌을 가능성입니다. 이런 '확증 편향'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굳게 믿게 만듭니다.
다음으로 '방어기제'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는 자아가 불안이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전략들을 체계화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번 사례에 적용해볼 수 있는 것은 '합리화'와 '부정'입니다.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UCLA 의과대학 측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아마도 자신들의 행위가 '다양성 증진'이나 '특정 배경의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는 식으로 '합리화'했을 수 있습니다. 즉, 실제로는 편향된 결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죠.
혹은 '부정'이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인종을 기준으로 차별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하는 모습은, 불편한 진실을 아예 인식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려는 무의식적 시도일 수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손으로 눈을 가리고 '나는 보이지 않아!'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거나, 자아상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예상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현실을 '부정'하곤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필자의 심리학적 추측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공정함'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 안에 숨어있는 '인지왜곡'과 '방어기제'는 어떻게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가 스스로를 '객관적'이라고 믿는 순간에도, 무의식의 그림자는 늘 우리 뒤를 따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편견'이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때로는 그 안경을 벗어보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 안의 그림자를 직시하는 용기, 그것이 진정한 공정함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