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5월 11일 월요일
발행 2026-05-23
BBC

'수학 시험'이 유발한 '집단 무기력'

'수학 시험'이 유발한 '집단 무기력'
스코틀랜드에서 고등 수학 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시험장을 나서며 울음을 터뜨렸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형편없이 출제된' 시험 문제 탓에 학생들이 좌절감과 무기력감에 빠졌고, 이 소식은 곧바로 사회적 논란으로 번졌습니다. 우리에게 시험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긴장과 불안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집단적인 '절망감'은 단순한 시험 부담을 넘어선, 더 깊은 심리적 배경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느꼈을 '절망감'의 기저에는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심리적 현상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학습된 무기력'이란, 반복적인 실패나 통제할 수 없는 부정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노력해도 소용없다고 믿고 결국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게 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이 개념은 미국의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이 1960년대 중반 개를 이용한 실험에서 처음 제시했습니다.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개들이 나중에는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고통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관찰한 것이죠. 우리 삶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거나, 특정 과목에서 계속해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으면 결국 '나는 이 과목에는 재능이 없어', '아무리 해도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수학 시험의 경우, 학생들이 아무리 열심히 준비했어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내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구나'라는 메시지를 내면화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단순히 시험을 못 본 것을 넘어, 자신의 능력과 노력 자체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위험합니다. 또한 학생들의 극심한 불안과 절망은 '인지 왜곡', 그중에서도 특히 '파국화'라는 인지적 오류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지 왜곡'은 현실을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해석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는 사고방식을 통칭합니다. 인지 치료의 창시자인 아론 벡 박사는 우리 마음속의 '자동적 사고'가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습니다. '파국화'는 작은 문제나 실수를 마치 세상의 종말처럼 과장하여 생각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시험을 망쳤으니 대학 진학은 끝이야', '내 인생은 이제 망했어'와 같이, 한 번의 시험 실패가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만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죠. 물론 시험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의 결과가 우리의 모든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은 비합리적이며, 불필요한 불안과 절망감을 증폭시킬 뿐입니다. 학생들은 아마도 시험 자체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그 시험이 자신의 미래에 미칠 '파국적인' 영향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되었을 것입니다. 필자 역시 어린 시절 시험에서 실수를 저질렀을 때,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순간에는 작은 오점 하나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았지요. 이러한 '학습된 무기력'과 '파국화'는 개인의 심리적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확산될 경우 사회 전반의 활력을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시험이라는 객관적 평가 도구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게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인 셈입니다. 우리가 이 사태를 단순히 '시험 문제 난이도 조절 실패'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험 결과가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