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년, 끝나지 않은 심리적 숙제

필자는 가끔 지하철역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멈칫하게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피고, 문이 잠겼는지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10년 전 그날의 기억은 필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많은 이에게 이처럼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그 충격적인 이름은 단순히 하나의 강력 범죄를 넘어 우리 집단의 심연을 뒤흔든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과연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요? 아니,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사회적 트라우마란, 특정 사건이 개인의 경험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깊은 정서적 상흔을 남기고, 장기적으로 집단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합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개인의 정신적 외상을 연구하며 트라우마 개념을 정립했지만, 우리는 강남역 사건처럼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집단 트라우마'의 양상을 목격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충격을 넘어 사회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위협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확산시켰습니다. 마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한 마을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하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강남역 사건은 특히 여성들에게 '나도 당할 수 있다'는 실존적 불안감을 안겨주었고, 이는 일상 공간에서의 경계심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필자 역시 그때 이후로 밤늦게 귀가하는 가족들에게 자연스레 '조심하라'는 말을 건네게 되었으니, 이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남긴 심리적 흔적은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을 것입니다.
사건 직후, 우리는 범인의 '정신 이상'이나 '개인의 일탈'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는 르네 지라르(René Girard)가 말한 '희생양 메커니즘'의 한 형태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라르는 인류 역사를 통해 집단 내 갈등이 고조될 때, 그 갈등의 원인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전가하고 그를 제거함으로써 일시적인 평화를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대 사회의 제의적 희생양부터 현대 사회의 마녀사냥까지, 우리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책임자를 찾아내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학교에서 싸움이 났을 때, 모두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가장 눈에 띄는 학생 한 명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버리려는 것과 비슷합니다. 강남역 사건에서도 복잡한 사회 구조적 문제나 젠더 갈등의 맥락을 외면하고, 범인 개인의 정신병력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고 싶었던 무의식적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회피는 종종 '인지 왜곡'으로 이어집니다. 인지 치료의 대가 아론 벡(Aaron Beck)은 사람들이 현실을 비합리적이거나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해석하며 스스로 고통받는다고 보았습니다. 강남역 사건을 두고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다', '그냥 미친 사람의 소행이다'라고 단정 짓는 주장들은 전형적인 인지 왜곡의 양상을 띱니다. 이는 사건의 본질을 '선택적으로 추상화'하거나, 중요성을 '극소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복잡한 사회 현상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축소함으로써, 우리는 문제의 근원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마치 '나는 원래 운이 없다'고 생각하며 모든 실패를 운 탓으로 돌리거나, '쟤는 원래 나쁜 사람이야'라고 치부하며 그 사람의 행동 이면에 있는 복잡한 동기를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우리는 '여성이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개인적 책임론에 매몰되거나, 혹은 '남성 전체를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는 반발에 부딪히며 진정한 사회적 대화의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그로부터 10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강남역 사건'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젠더 갈등은 격화되고, 특정 성별에 대한 혐오 표현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10년 전 그 사건을 통해 충분히 성찰하지 못하고,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전가하는 데 급급했거나, 혹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인지 왜곡에 갇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치유는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필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조심하라'는 경고나, 누군가를 비난하는 손가락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 각자가 가진 무의식적인 편견과 사회 전체에 깔린 차별적 인식을 돌아보는 용기일 것입니다. 강남역 사건 10주기를 맞아, 우리 모두가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과연 그날의 비극으로부터 무엇을 배웠으며,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그 답은 어쩌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 내면 깊은 곳의 성찰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는 용기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