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폭행, '내 안의 괴물'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 사회는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로 몸살을 앓곤 합니다. 필자는 며칠 전 뉴스를 접하고 한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습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그것도 아무런 이유 없이, 낯선 여성을 폭행한 20대 남성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불안감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번화한 도시의 밤거리, 그곳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다시금 직시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저 ‘이상한 사람’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은 ‘내 안의 괴물’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임상심리학자로서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 심리의 복잡한 층위들을 들여다보려 노력합니다. 폭행을 저지른 가해자의 내면에서는 과연 어떤 심리적 역동이 작동했을까요?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개념 중 하나는 바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일 것입니다. 방어기제란,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불안이나 갈등을 감소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심리적 전략을 말합니다. 이는 자아를 보호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이며, 때로는 현실을 왜곡하여 자신을 불편한 진실로부터 격리시키기도 합니다.
이 개념은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고, 그의 딸 안나 프로이트에 의해 체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안나 프로이트는 방어기제가 단순히 병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심리적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편적인 기제임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자신의 실수를 부인하거나, 시험에 떨어지고도 ‘나는 원래 그 시험에 관심 없었어’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 방어기제의 일종인 ‘부인(denial)’이나 ‘합리화(rationalization)’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강남역 폭행 사건의 가해자는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분노, 열등감, 무력감과 같은 불편한 감정들을 직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을 무의식적으로 외부로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술이 이러한 방어기제를 강화하거나, 억압된 충동을 해제하는 촉매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심리적 개념인 ‘투사(Projection)’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투사는 자신의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이나 충동, 특성 등을 타인에게 전가하여 마치 타인의 것인 양 인식하는 방어기제의 일종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화가 나고 불안한데, 저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투사를 편집증과 같은 정신병적 증상의 핵심으로 보았지만, 칼 융과 같은 다른 심리학자들은 투사를 인간관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누군가를 싫어하면서도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투사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는 뉴욕의 부패한 현실에 대한 자신의 혐오와 분노를 거리의 사람들에게 투사하며, 결국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대신, 외부의 ‘악’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을 정화하려 했던 것이지요.
강남역 폭행 사건의 가해자도 이와 유사한 심리적 역동을 겪었을 수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내면에 쌓인 좌절감, 분노, 혹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어떤 특정한 대상에게 투사했을 것입니다. 일면식 없는 여성이 그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그 여성이 특별히 어떤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가해자 내면의 무의식적인 갈등을 투사하기에 가장 쉽고 취약한 ‘스크린’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폭행을 통해 자신의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을 외부로 내보내려 했지만, 결국 그 행동은 더 큰 사회적 파장과 개인의 파멸로 이어질 뿐입니다. 이는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고, 세상이 온통 어둡다고 불평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마주해야 할까요? 아마도 단순히 가해자를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작동하는 복잡한 심리적 기제와 사회적 맥락을 함께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가해자의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임상심리학적 관점은 단순히 ‘악하다’는 단정으로 사건을 종결시키는 대신, 그 ‘악’이 어디에서 기원하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하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크고 작은 방어기제가 존재하며, 때로는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무의식의 흐름을 인지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개인의 심리적 건강과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얼마나 더 깊이 고민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줍니다. 필자 역시 때때로 내 안의 불편한 감정들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곤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림자를 외면할수록 그림자는 더욱 커진다는 사실을 되새기려 노력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 안의 그림자를 인정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맺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습니다.
내 안의 그림자를 마주할 용기가 우리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