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5월 20일 수요일
발행 2026-05-19
경향신문 사회

불매운동, 분노의 연쇄반응인가

불매운동, 분노의 연쇄반응인가
어떤 순간, 우리는 한데 뭉쳐 분노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손가락질하는 대상에게 모든 화살을 돌립니다. 최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불거진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행사 논란과 그에 이은 불매운동을 보며 필자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 기업의 마케팅 전략은 대중의 정서를 섬세하게 읽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섬세함이 부족하여 의도치 않은 파장을 낳기도 합니다. 이번 사태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왜 하나의 사건이 이토록 거대한 집단적 분노로 이어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단순히 기업의 실책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더 깊은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듯합니다. 필자는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심리학적 개념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집단사고(Groupthink)’입니다. 이 개념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가 1972년 저서에서 제시한 것으로, 응집력이 높은 집단이 만장일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비판적 사고나 현실적인 대안 모색을 등한시하여 비합리적이거나 비인도적인 결정을 내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1961년 미국의 피그스만 침공 실패나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고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죠. 내부의 결속을 중요시하는 조직일수록 외부의 시선이나 비판적인 의견을 차단하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스타벅스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5.18이라는 역사적 맥락과 ‘탱크’라는 상징이 가질 수 있는 민감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담당자들은 자신들의 의도가 순수했음을 주장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집단사고의 함정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는 내부의 확신이 외부의 ‘옳지 않음’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조직이 이런 집단사고의 늪에 빠져 잘못된 판단을 내리곤 합니다. 과연 스타벅스라는 큰 조직에서는 어떤 내부 논의가 오갔을까요? 아마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판단이나, 혹은 ‘우리만의 특별한 이벤트’라는 자만심이 작용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조직의 응집성을 높일 수는 있어도,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민감성을 떨어뜨려 결국은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희생양 메커니즘(Scapegoat Mechanism)’입니다.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고대 사회에서 공동체의 위기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지목하여 모든 죄와 불행을 전가하고 추방함으로써 공동체의 평화를 회복하려 했던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 메커니즘은 여전히 작동합니다.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나 집단적 분노가 터져 나왔을 때, 우리는 종종 그 분노를 한데 모아 특정 대상에게 쏟아붓곤 합니다. 스타벅스 불매운동의 경우, 정용진 회장의 과거 ‘멸공’ 발언이 이번 논란과 겹쳐지며 대중의 분노가 한 인물에게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이번 ‘탱크데이’ 사건에 대한 반발을 넘어, 그동안 쌓여 있던 사회적 불만과 갈등, 특정 기업이나 인물에 대한 반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정 회장이 직접 사과하고 대표를 경질했음에도 여론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은, 그가 이제 단순히 한 기업의 오너를 넘어, 대중의 집단적 분노를 해소할 ‘희생양’의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저 사람이 문제야!” 하고 외치는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복잡한 문제의 해답을 찾은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희생양을 찾는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요. 세 번째는 ‘인지왜곡(Cognitive Distortion)’의 문제입니다. 인지치료의 대가인 아론 벡(Aaron Beck)은 개인이 현실을 비합리적으로 해석하는 다양한 사고방식을 인지왜곡으로 설명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 속에는 여러 인지왜곡이 혼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선택적 추상화’는 전체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특정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과잉 일반화’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결론짓는 것입니다. 5.18 기념일에 ‘탱크’라는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분명 부적절했지만, 이것이 ‘기업 전체가 5.18 정신을 훼손하려 했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되거나, 과거의 다른 논란들과 엮여 ‘이 기업은 원래 글러먹었다’는 식의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인지왜곡의 한 형태일 수 있습니다. 물론, 기업의 과거 행적과 현재의 실수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격앙된 상태에서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기보다, 자신의 감정과 신념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미 형성된 믿음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분노를 느끼는 대상에 대해 더욱 부정적인 정보만을 찾아내고, 긍정적인 면은 애써 외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번 스타벅스 불매운동은 단순한 기업 비판을 넘어, 우리 사회의 집단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집단사고가 낳은 기업의 실책, 그리고 그 실책이 희생양 메커니즘을 통해 특정 대상에게 분노를 집중시키고, 이 과정에서 인지왜곡과 확증 편향이 더해져 감정의 소용돌이가 증폭되는 모습 말입니다. 필자는 이 모든 과정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집단적 감정을 표출하고 해소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심리적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함께 성찰해보고 싶을 뿐입니다. ‘자기성찰’ 우리는 때로 끓어오르는 감정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거대한 분노의 파도에 휩쓸려, 내가 정말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조차 잊어버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과 사회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어떤 심리적 기제에 반응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정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