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부르는 해고의 노래, 상처 입은 자아의 연주

최근 필자는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접했습니다. 거대 테크 기업 메타에서 갑작스레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인공지능, 즉 AI를 이용해 자신의 해고를 주제로 한 노래를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떤 노래는 슬프고, 어떤 노래는 분노에 차 있으며, 또 어떤 노래는 기이할 정도로 유쾌하다고 합니다. 이 기묘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단순히 MZ세대의 독특한 밈 문화나 씁쓸한 유머 정도로 넘겨야 할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필자는 이 현상이 ‘심리적 통제감’을 되찾으려는 인간의 처절하면서도 창의적인 몸부림이라 생각합니다.
해고는 단순히 돈벌이가 끊기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가해지는 깊은 상처이자 외상, 즉 트라우마입니다. 어제까지 내 이름 앞에 붙어 있던 직함, 매일 출근하던 공간,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경험은 세상이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다는 우리의 믿음을 뿌리부터 뒤흔듭니다. 통제 불가능한 외부의 힘에 의해 내 삶이 멋대로 재단당했다는 무력감은 우리를 깊은 우울과 불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고된 메타 직원들의 ‘AI 노래 만들기’는 놀라운 심리적 기제로 작동합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승화’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원초적 욕망이나 파괴적 충동을 예술이나 학문, 창작 활동 같은 가치 있는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방어기제를 말합니다. 해고로 인한 분노, 슬픔, 모멸감 같은 날것의 감정은 우리를 파괴할 수도 있는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이들은 이 에너지를 파괴적으로 분출하는 대신 ‘노래’라는 창작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무언가를 부수는 대신, 그들은 코드를 짜고 가사를 입력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그 도구가 바로 ‘AI’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조직의 효율성을 위해 자신들을 ‘비용’으로 취급하게 만든 바로 그 기술을 역으로 이용하는 셈입니다. 이는 마치 어둠을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손전등을 쥐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손전등이 어둠을 없애주지는 못하지만, 아이는 빛을 비추는 행위를 통해 어둠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게 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덮친 거대한 기술의 파도를 두려워하며 삼켜지는 대신, 그 파도 위에 올라타 서핑을 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대상을 창작의 도구로 삼는 행위. 이것이야말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가장 능동적이고 세련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 노래들을 온라인에 공유하며 이들은 보이지 않는 ‘연대’를 구축합니다.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위로와 함께, 각자의 상처는 ‘해고당한 개발자들의 합창’이라는 집단적 서사로 거듭납니다. 심리학자 칼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처럼, 이들은 가장 현대적인 기술을 통해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 기묘한 노래들은 단순한 조롱이나 한풀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부서진 자아를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세우려는 안간힘이자, 차가운 기술의 시대에 인간성을 지키려는 뜨거운 저항의 기록입니다.
당신의 상처는 지금 어떤 노래를 만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