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비극’ 혹은 ‘우리의 무관심’이 낳은 그림자

나는 종종 '인간의 고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임상 현장에서 수많은 이들의 아픔을 마주할 때마다, 그 복잡하고 깊은 심연에 새삼 놀라곤 하지요. 최근 한 언론에서 보도된 '정신병원 간호사도 기함한 가족의 어이없는 비극'이라는 기사를 접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필자는 이 짧은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체 어떤 비극이길래, 수많은 인간 군상을 보아온 정신과 간호사마저 '기함'할 정도였을까요. 어쩌면 그 비극은 단순히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어떤 그림자의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가장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이 기사 속 가족 역시 그랬을 것입니다.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가족 구성원과 그를 돌보는 이들의 외로운 싸움은, 바깥세상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전쟁'과 같습니다. 이들이 겪는 고통의 양상은 복합적입니다. 질병 자체의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 편견과 낙인, 그리고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외로움까지, 이 모든 것이 가족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희생양 메커니즘'이라는 심리적 현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오래전부터 인류 사회에 만연했던 이 '희생양 메커니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집단 내부에 갈등이나 불안이 증폭될 때, 그 집단은 내부의 모든 문제와 갈등의 원인을 특정 개인에게 전가하고, 그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제거함으로써 일시적인 평화를 얻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속죄일에 공동체의 모든 죄를 염소에게 전가하여 광야로 내보냈던 것처럼 말이지요.
물론 이 기사 속 가족이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때때로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을 앓게 될 때, 그 병 자체가 가족 내부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혹은 외부로부터 오는 압박과 스트레스의 '희생양'이 되어버리는 경우를 보아왔습니다. '모든 문제가 저 사람의 병 때문이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고통을 회피하게 만들고, 결국 병을 앓는 이에게 더 큰 고립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가족은 병의 원인이 아니라, 병이 불러온 어려움에 함께 맞서야 할 동반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여, 병마와 싸우는 가족은 종종 사회로부터, 심지어는 가족 내부로부터도 '문제의 근원'으로 인식되는 비극을 겪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역설입니까.
이처럼 고립된 싸움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깊은 '분리불안'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존 보울비(John Bowlby)가 제시한 '애착 이론'은 유아기에 형성되는 부모와의 관계가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 관계의 근간을 이룬다고 설명합니다.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탐색을 할 수 있지만, 불안정한 애착은 끊임없는 불안과 관계에 대한 회의를 낳습니다.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과 그를 돌보는 가족은 사회로부터의 단절 속에서 일종의 '집단적 분리불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혼자 남겨졌을까, '우리'를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걸까 하는 근원적인 불안감이 가족 전체를 짓누르는 것이지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서 떨어져 홀로 남겨졌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극심한 고통이, 어른들의 가족 안에서, 심지어는 나이가 지긋한 부모의 마음속에서도 휘몰아칠 수 있습니다. 이 '분리불안'은 가족 구성원들이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하고, 서로에게만 의존하게 만들거나, 혹은 서로를 더욱 힘들게 하는 역기능적인 패턴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필자가 임상 현장에서 흔히 목격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 비극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의 회복'일 것입니다. 가족 내부의 건강한 관계를 되찾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와의 건강한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신질환은 개인의 나약함이나 가족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삶의 그림자'이며, 우리 사회가 함께 보듬어야 할 과제입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 윌이 숀 교수와의 상담을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것처럼, 이 비극 속 가족에게도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필자는 우리의 사회가 이들을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과 그 가족들이 겪는 외로움은, 사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집단적 무관심'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들의 아픔에 좀 더 귀 기울이고, 그들의 손을 잡아줄 때 비로소 그들은 고립감에서 벗어나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때로는 환자들의 고통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과연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자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필자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임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함께'라는 연대의 마음이, 세상의 모든 '외로운 싸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외로운 싸움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