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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5월 22일 금요일
발행 2026-05-21
한겨레 사회

‘가족의 비극’ 혹은 ‘우리의 무관심’이 낳은 그림자

‘가족의 비극’ 혹은 ‘우리의 무관심’이 낳은 그림자
나는 종종 '인간의 고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임상 현장에서 수많은 이들의 아픔을 마주할 때마다, 그 복잡하고 깊은 심연에 새삼 놀라곤 하지요. 최근 한 언론에서 보도된 '정신병원 간호사도 기함한 가족의 어이없는 비극'이라는 기사를 접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필자는 이 짧은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대체 어떤 비극이길래, 수많은 인간 군상을 보아온 정신과 간호사마저 '기함'할 정도였을까요. 어쩌면 그 비극은 단순히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어떤 그림자의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서로에게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가장 깊은 상처를 주고받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이 기사 속 가족 역시 그랬을 것입니다.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가족 구성원과 그를 돌보는 이들의 외로운 싸움은, 바깥세상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전쟁'과 같습니다. 이들이 겪는 고통의 양상은 복합적입니다. 질병 자체의 어려움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 편견과 낙인, 그리고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외로움까지, 이 모든 것이 가족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희생양 메커니즘'이라는 심리적 현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오래전부터 인류 사회에 만연했던 이 '희생양 메커니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집단 내부에 갈등이나 불안이 증폭될 때, 그 집단은 내부의 모든 문제와 갈등의 원인을 특정 개인에게 전가하고, 그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아 제거함으로써 일시적인 평화를 얻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속죄일에 공동체의 모든 죄를 염소에게 전가하여 광야로 내보냈던 것처럼 말이지요. 물론 이 기사 속 가족이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때때로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을 앓게 될 때, 그 병 자체가 가족 내부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혹은 외부로부터 오는 압박과 스트레스의 '희생양'이 되어버리는 경우를 보아왔습니다. '모든 문제가 저 사람의 병 때문이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짊어져야 할 책임과 고통을 회피하게 만들고, 결국 병을 앓는 이에게 더 큰 고립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가족은 병의 원인이 아니라, 병이 불러온 어려움에 함께 맞서야 할 동반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여, 병마와 싸우는 가족은 종종 사회로부터, 심지어는 가족 내부로부터도 '문제의 근원'으로 인식되는 비극을 겪습니다. 이 얼마나 슬픈 역설입니까. 이처럼 고립된 싸움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깊은 '분리불안'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존 보울비(John Bowlby)가 제시한 '애착 이론'은 유아기에 형성되는 부모와의 관계가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 관계의 근간을 이룬다고 설명합니다.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탐색을 할 수 있지만, 불안정한 애착은 끊임없는 불안과 관계에 대한 회의를 낳습니다.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과 그를 돌보는 가족은 사회로부터의 단절 속에서 일종의 '집단적 분리불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혼자 남겨졌을까, '우리'를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걸까 하는 근원적인 불안감이 가족 전체를 짓누르는 것이지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서 떨어져 홀로 남겨졌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극심한 고통이, 어른들의 가족 안에서, 심지어는 나이가 지긋한 부모의 마음속에서도 휘몰아칠 수 있습니다. 이 '분리불안'은 가족 구성원들이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하고, 서로에게만 의존하게 만들거나, 혹은 서로를 더욱 힘들게 하는 역기능적인 패턴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필자가 임상 현장에서 흔히 목격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 비극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의 회복'일 것입니다. 가족 내부의 건강한 관계를 되찾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와의 건강한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신질환은 개인의 나약함이나 가족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삶의 그림자'이며, 우리 사회가 함께 보듬어야 할 과제입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 윌이 숀 교수와의 상담을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것처럼, 이 비극 속 가족에게도 타인과의 '진정한 연결'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필자는 우리의 사회가 이들을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되묻습니다.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과 그 가족들이 겪는 외로움은, 사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집단적 무관심'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들의 아픔에 좀 더 귀 기울이고, 그들의 손을 잡아줄 때 비로소 그들은 고립감에서 벗어나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때로는 환자들의 고통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과연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자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필자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임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함께'라는 연대의 마음이, 세상의 모든 '외로운 싸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외로운 싸움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