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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5월 23일 토요일
발행 2026-05-23
한겨레 사회

마음의 감옥, 우리 안의 '타자화'를 마주할 때

마음의 감옥, 우리 안의 '타자화'를 마주할 때
문득, 필자는 어린 시절 보았던 한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흉측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엘리펀트 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그저 평범한 한 인간으로 살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은 그를 '괴물'로 규정하고 구경거리로 삼았지요. 그 영화를 보며 느꼈던 깊은 슬픔과 함께,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른 이들을 온전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슬픔에 잠기게 한 발달장애인의 정신병원 사망 소식은, 필자에게 '엘리펀트 맨'의 그림자를 다시금 드리우게 했습니다. 우리는 왜 어떤 이들을 그토록 쉽게 '타자'로 만들고, 심지어 '탈인간화'까지 시키는 걸까요? '타자화'는 심리학에서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의 대상이 아닌, 규정하고 배제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심리적 과정으로 설명됩니다. 이는 단순히 다름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그 다름이 곧 열등함이나 위협으로 인식되어 특정 집단을 '우리'라는 범주 밖으로 밀어내는 현상입니다. 사회심리학자 앙리 타지펠(Henri Tajfel)의 '사회 정체성 이론'은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는 '내집단'과 그 외의 '외집단'을 구분하며, 내집단에 대한 긍정적 편향과 외집단에 대한 부정적 편향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발달장애인과 같은 소수 약자 집단은 종종 이러한 '외집단'으로 분류되어 이해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타자화'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탈인간화'라는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특정 집단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특성을 박탈하고, 마치 사물이나 동물처럼 취급하는 심리적 과정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잔혹한 행위나, 르완다 내전의 참상 뒤에는 언제나 상대방을 '탈인간화'하는 심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그들에게 가하는 고통과 폭력에 대한 죄책감을 무의식적으로 덜어내는 것이지요. 발달장애인이 정신병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는 현실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들을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권리와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고 '탈인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들을 그저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겼던 것은 아닐까요. '불편한 존재'로 치부해버린 것은 아닐까요. 이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때, 우리는 또 다른 심리적 전략을 사용하곤 합니다. 바로 '방어기제'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시한 '방어기제'는 고통스러운 현실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동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는 무의식적인 심리 전략입니다. 그중에서도 '부정'과 '합리화'는 우리가 사회적 문제에 눈감게 만드는 강력한 기제들입니다. '부정'은 현실 자체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아” 혹은 “우리 사회는 괜찮아, 일부의 일일 뿐이야”라고 말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지요. 발달장애인의 죽음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을 돌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태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음으로 '합리화'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필자도 때로는 해야 할 일을 미루고는 '피곤해서', '지금은 때가 아니라서'와 같은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곤 합니다. 이처럼 사회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부족이나 시스템의 미비를 ‘예산 부족’이나 ‘전문 인력의 한계’ 같은 이유로 합리화하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대신,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합리화'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결코 발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라며 치킨을 시켜 먹는 것처럼, 우리는 불편한 현실 앞에서 수많은 '합리화'의 이유를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과연 이 비극 앞에서 얼마나 정직하게 우리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있을까요? 그들을 '다른 존재'로 치부하고,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부정'하거나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필자는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우리 안의 무의식적인 편견과 외면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으로 '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니까요. 우리 안의 '타자화'와 '부정',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순간을 민감하게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감옥을 만들고 그 안에 누군가를 가두는 비극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눈을 감지 않고, 우리 옆의 '다른' 이들을 온전히 '우리'로 받아들이려는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안의 편견을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