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6월 1일 월요일
발행 2026-05-31
경향신문 사회

진실을 외면하는 마음의 필터

진실을 외면하는 마음의 필터
최근 경찰은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우리 사회를 뒤흔든 비극적인 사건들을 '사기'라 칭하며 허위 글 3000여 건을 온라인에 반복적으로 유포한 50대 남성을 구속했습니다.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을 모욕한 혐의로 구속된 이 남성의 소식은 필자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왜 때로는 명백한 사실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이의 고통을 외면하려 하는 것일까요? 이 남성이 수많은 비극적 사건들을 '사기'라고 주장하며 허위 정보를 반복해서 유포한 행위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왜곡'의 극단적인 형태 중 하나로 보입니다. '인지왜곡'이란 개인이 현실을 비합리적으로 해석하거나 평가하는 사고방식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행동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인지행동치료의 선구자로 불리는 아론 벡(Aaron Beck) 박사는 인간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부정적 사고에 빠지기 쉽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왜곡된 사고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마치 '필터'가 씌워진 안경을 쓴 것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약과 파란 약 중 하나를 선택하듯,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는 대신 익숙하거나 혹은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을 선택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남성의 경우, 그는 아마도 그만의 '필터'를 통해 참사의 본질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증거와 증언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그것들이 모두 '거짓'으로 비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려 할까요? 아마도 '진실'이 주는 압도적인 고통과 무력감, 그리고 어쩌면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는 근본적인 불안에 직면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제시한 '방어기제' 중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부정'과, 불안을 줄이기 위해 비합리적인 행동이나 생각을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하는 '합리화'가 있습니다. 참사의 본질을 '사기'로 치부하는 것은 비극적인 현실이 주는 고통과 무력감, 그리고 어쩌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느끼는 죄책감이나 불안감을 피하려는 '부정'의 시도일 수 있습니다. 거대한 재난 앞에서 개인은 한없이 나약해지고, '나도 언제든 저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누군가의 조작이야'라고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그 불안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가 나타나는 것이죠. 마치 어린 아이가 눈앞의 현실을 '아니야'라고 외면하거나, 숙제를 안 해놓고 '배가 아파서'라고 변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거대한 재난의 충격이나 자신의 무력감을 인정하기 싫을 때, 이처럼 '부정'하거나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합리화'의 과정도 함께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지왜곡'과 '방어기제'는 개인의 마음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심지어 모욕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이는 더 이상 개인적인 방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병폐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진실'은 고통스럽더라도 직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할수록,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오해와 갈등의 늪으로 빠져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필자 역시 때로 불편한 현실 앞에서 눈을 감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는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진실을 외면하는 용기보다 마주할 용기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