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감옥, 인지 왜곡의 덫

지난 지방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새벽, 서울 잠실의 한 투표소에서는 시민 수백 명이 모여 '선거 무효', '개표 중단'을 외치며 투표함 반출을 막아섰습니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한 투표 중단 사태가 '부정선거'라는 의혹으로 번지며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여 특정 주장을 외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필자는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한 '믿음'이라는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를 떠올리곤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왜 그 믿음이 때로는 확고한 현실처럼 느껴지게 되는 걸까요?
어떤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진실을 주장하는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각자 다르게 해석하고, 심지어는 보지 않은 것까지 보았다고 확신하는 경우도 있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왜곡'이라고 부릅니다. '인지 왜곡'이란 개인이 현실을 비합리적으로 혹은 비논리적으로 해석하는 사고방식을 의미합니다. 인지치료의 선구자인 아론 벡 박사는 우리의 감정과 행동이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치 특정한 색깔의 '색안경'을 낀 것처럼, 세상의 모든 정보가 그 색으로만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부정선거'라는 의혹을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투표용지 부족 현상이나 사소한 행정 오류마저도 그 의혹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비치게 됩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자신의 믿음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하거나 축소해버리는 '확증 편향'이 대표적인 인지 왜곡의 한 형태입니다.
개인의 인지 왜곡이 때로는 집단의 현상으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잠실 투표소에서 수백 명이 한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집단 사고'라는 심리적 현상과 연결됩니다.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 박사는 1970년대 그의 저서에서 '집단 사고'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의사결정을 할 때, 구성원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유보하고 집단의 화합과 동질성을 유지하려는 압력에 굴복함으로써 비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집단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외부인으로 간주하고, 집단의 결정이 무조건 옳다는 '집단적 합리화'를 정당화합니다.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히게 되는 것이죠.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이라는 닫힌 공간 속에서 죄수들이 자신들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모습도 어쩌면 작은 '집단 사고'의 한 형태일 수 있습니다. 외부의 새로운 정보나 비판적인 시각이 들어오기 어렵고, 내부의 압력에 의해 동조가 강화되는 환경에서는 집단 사고가 더욱 견고해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믿음의 감옥'에서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필자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과연 전부일까?', '나의 믿음은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한 것일까, 아니면 나의 욕망이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일까?' 같은 질문들 말입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념에 도전하는 것은 때로 고통스럽고 불안한 경험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자기 성찰이야말로 우리를 '인지 왜곡'과 '집단 사고'의 덫에서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관점을 기꺼이 수용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마음의 자유를 지키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세상과 나를 비추는 거울을 때때로 닦아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