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6월 5일 금요일
발행 2026-06-04
한겨레 사회

진실과 믿음 사이, 마음의 그림자

진실과 믿음 사이, 마음의 그림자
서울의 한 노인정에서 수천 표의 투표함이 이틀째 갇혀있고, 이 주변에 '부정선거론자'들이 모여 투표함을 지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단이 되어 벌어진 일이라고 하는데, 누구에게나 자신이 옳다고 믿고 싶은 순간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필자 또한 가끔은 눈앞의 사실보다 마음속의 '확신'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안의 '진실'을 향한 열망이 때로는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판단을 내립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사람들은 객관적인 증거나 합리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상황을 해석하곤 합니다. 이런 현상을 임상심리학에서는 '인지왜곡'이라고 부릅니다. 인지왜곡이란 개인이 현실을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해석하는 사고방식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신의 기존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마치 특정한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지왜곡은 인지치료의 창시자인 아론 벡(Aaron Beck) 박사가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룬 개념입니다. 벡 박사는 우울증 환자들이 '부정적 자동적 사고'라는 왜곡된 인지 패턴에 갇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가령, 작은 실패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극대화하거나, 타인의 중립적인 표정을 '나를 싫어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 식입니다. 이처럼 인지왜곡은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흐리게 만들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번 사건에서 '부정선거론자'들이 특정 정보를 맹신하고, 선거관리위원회의 해명이나 다른 증거들을 '음모'로 치부하는 모습도 이러한 인지왜곡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확증 편향'이라는 심리 기제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믿음을 지지하는 정보만 찾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배척하는 것이죠. 개인의 인지왜곡이 더욱 강력해지고 확산되는 과정에는 '집단사고'라는 또 다른 심리 현상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높은 집단이 외부의 비판이나 대안적인 사고를 억압하고, 만장일치로 합의에 도달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피그만 침공 실패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분석하며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집단 내에서 '우리'의 의견만이 옳다고 여기고, '그들'의 의견은 틀렸다고 단정하는 '내집단 편애'가 극심해지면, 합리적인 판단 능력은 마비되기 쉽습니다.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에서 아무도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집단 내에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억압되고, 주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필자 또한 대학 시절, 한 프로젝트 팀에서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의견을 몰아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분명히 비합리적인 부분이 있었음에도, 당시에는 '우리 팀'의 단합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침묵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과적으로 프로젝트는 실패했고, 그때서야 우리는 각자의 '인지왜곡'과 '집단사고'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노인정에 모인 사람들도 아마 자신들의 집단 안에서 '부정선거'라는 믿음을 굳건히 하며, 외부의 모든 반대 의견을 '음모' 혹은 '조작'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듯합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합리적 사고는 집단의 강력한 동조 압력 앞에 무력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향한 열망이 때로는 '믿고 싶은 것'과 '진실'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굳건할수록, 반대되는 증거를 외면하려는 유혹은 더욱 커집니다. 하지만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믿음조차도 잠시 내려놓고, 다양한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유연함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믿는 것만이 진실이라는 고집일까요, 아니면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색하며 더 넓은 진실에 다가가려는 열린 마음일까요? 필자는 오늘 우리 모두가 한번쯤 자신의 '믿음'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제안합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작은 시작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진실을 향한 열린 마음,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