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남'의 아이를 보며 불안해할까?

뉴스에 따르면, 최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발표한 백서는 우리 사회의 교육열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4세 아이들을 위한 '4세 고시'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의대반'까지, 그리고 한 달에 무려 150만원에 달하는 영어유치원 수업료 이야기는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소식을 접하며 필자는 문득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이 과열된 경쟁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온갖 노력을 쏟아붓는 우리 부모들은 정말 괜찮은 걸까요?
우리는 흔히 '분리불안'이라고 하면 어린 아이가 엄마와 떨어질 때 느끼는 극심한 불안감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임상심리학에서 '분리불안'은 단순히 물리적인 떨어짐뿐만 아니라, 특정 대상과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상실될까 봐 두려워하는 광범위한 심리적 상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선행학습 열풍 속에서 부모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어쩌면 아이들이 '성공'이라는 궤도에서 '분리'될까 봐 두려워하는 일종의 '분리불안'일 수 있습니다.
존 보울비(John Bowlby)는 애착 이론을 통해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아이의 정서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불안한 애착'이 아이의 교육 문제로 전이될 때, 아이는 부모의 불안을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옆집 아이는 벌써 이걸 하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이라는 생각은 부모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뒤처짐에 대한 분리불안'이 아닐까요? 필자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친구의 자녀와 비교하며 '너는 왜 저 아이처럼 하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실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그 불안감은 아이가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느끼는 '애착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불안감은 종종 '인지왜곡'으로 이어집니다. '인지왜곡'은 아론 벡(Aaron Beck)이 제시한 개념으로, 현실을 비합리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고의 오류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대학 입시는 실패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이나, '우리 아이는 특별하니 남들보다 더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식의 비현실적인 '개인화된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과연 모든 아이에게 '더 빠르고 더 많은 학습'이 최선일까요? 아이의 발달 단계를 무시하고 억지로 주입하는 교육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리는 충분히 고려하고 있을까요?
또한, 이러한 현상은 '집단사고'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가 제시한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에서 구성원들이 합리적인 대안을 탐색하기보다, 집단의 통일된 의견에 순응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무비판적인 태도는 선행학습 열풍을 더욱 부추기는 원인이 됩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시스템이 보여주는 환상 속에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모두가 가는 길'이라는 환상에 갇혀 아이들 각자의 잠재력과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마도 우리는 '다수의 선택은 항상 옳다'는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혀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불안'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바라보게 된 걸까요? 어쩌면 아이들은 우리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이나 욕망을 투사하는 '자기대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인 양 착각하며, 아이의 삶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무의식적인 시도 말입니다.
필자는 우리에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자신은 어떤 불안감에 휩싸여 아이의 미래를 재단하고 있는지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남'의 아이가 아닌 '내' 아이의 속도와 방향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성공'으로 가는 첫걸음일 듯합니다.
필자 역시 때로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휩싸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과연 나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되묻곤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자기답게' 살아갈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