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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6월 8일 월요일
발행 2026-06-07
경향신문 사회

'부정선거'가 만든 '환상'의 심리

'부정선거'가 만든 '환상'의 심리
서울 송파구의 한 개표소에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시작된 시위가 시간이 흐르면서 '재선거' 요구에서 '부정선거' 주장으로 변질되고 심지어 참석자들 사이의 충돌까지 빚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특정 사태에 대한 합리적 요구였던 것이, 점차 거대한 음모론의 형태로 진화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종종 목격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왜 때때로 객관적 사실을 넘어선 '환상'에 매몰되는 것일까요? 필자는 오늘 이 질문에 대한 심리학적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우선, 사람의 마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신념이나 감정에 맞춰 재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 왜곡'이라고 부릅니다. 인지 왜곡이란, 개인이 현실을 비합리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에 맞추는 경향을 말합니다. 인지 치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론 벡(Aaron Beck)은 이러한 비합리적 사고 패턴이 우울증과 같은 다양한 심리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객관적 사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발생할 수 있는 행정적 실수일 수도, 혹은 의도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이 사실은 '거대한 음모'의 결정적인 증거로 '왜곡'되어 받아들여집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하여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처럼, 우리는 때로 '파란 약'을 선택하여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필자가 예전에 상담했던 한 내담자는 연인의 사소한 거짓말을 '나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로 확대 해석하며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갔습니다. 객관적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작은 사건이었지만, 그 내담자의 불안한 마음은 그 사소한 거짓말을 '나를 버릴 것'이라는 거대한 그림으로 '인지 왜곡'했던 것이죠. 개표소 시위에서 '투표용지 부족'이 '부정선거'로 이어진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정보에만 선택적으로 귀 기울이는 '확증 편향'이 작동하며, 이미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의심의 씨앗이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의 '인지 왜곡'은 '집단사고'라는 현상과 만나면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비판적 사고를 억압하고 만장일치를 추구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챌린저호 폭발 사고와 같은 역사적 사례들을 분석하며, 집단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집단사고'를 지목했습니다. 시위 초기의 '재선거' 요구가 '부정선거' 주장으로 획일화되고, 심지어 '재선거만 하라'는 참석자들과 '부정선거'를 외치는 참석자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 것은 '집단사고'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집단 내에서 특정 주장이 힘을 얻으면, 그 주장에 반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비판적 시각은 '우리' 집단의 단합을 해치는 것으로 간주되거나, 심지어 '적'의 논리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마치 맹목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돌진하는 물고기 떼처럼, 집단은 특정 믿음이나 행동 양식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 의심이나 반대 의견은 묵살되고, 집단 구성원들은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침묵하거나 동조하게 됩니다. 개표소 시위에서 '성조기 부대'와 '태극기 부대' 사이의 갈등은 이러한 집단 내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배타적인 심리가 작용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인지 왜곡'이 개인의 마음속에서 싹트면, '집단사고'는 그 왜곡된 씨앗을 비옥한 토양 삼아 거대한 믿음의 숲으로 키워냅니다. 그리고 그 숲은 때로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환상' 속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갈등하며, 결국 아무도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인지 왜곡'과 '집단사고'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필자 역시 어떤 사안에 대해 맹목적으로 믿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온전한 현실인지, 아니면 나의 믿음이 만들어낸 '환상'의 일부는 아닌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내가 믿는 것이 과연 '현실'일까, '환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