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라는 착각이 부른 비극

독감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가를 사용하지 못한 채 출근을 이어가다 숨진 20대 사립유치원 교사의 사망이 직무상 재해로 인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학연금공단은 사망과 업무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직업인들의 고통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며 필자는 마음 한켠이 시큰거렸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어떤 '강박'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워야만 직업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 유치원 교사가 겪었을 고통은 아마도 '번아웃'이라는 심리적 현상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번아웃'이란 한 개인이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며 무기력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헤르베르트 프로이덴버거가 1970년대 뉴욕의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이 현상을 발견한 이래,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직업인들이 번아웃 증후군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마치 연료가 바닥난 자동차처럼, 혹은 모든 것을 태워버린 촛불처럼, 우리 몸과 마음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죠.
필자의 상담실을 찾아오는 많은 이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놓곤 합니다. '내가 아니면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 '나 하나쯤 없어도 잘 돌아갈 텐데, 그래도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같은 생각들입니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종종 '인지왜곡'이라는 심리적 기제가 작용합니다. '인지왜곡'이란 현실을 비합리적으로 해석하거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과장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 교사의 사례에서는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시한 방어기제 중 하나인 '합리화'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나 감정을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하여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교사는 '독감에 걸렸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희생은 당연해', '다른 선생님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돼'와 같은 생각들로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합리화'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이솝 우화 속 여우가 따지 못하는 포도를 보며 '저 포도는 분명 신 포도일 거야'라고 합리화하는 것처럼 말이죠. 몸이 보내는 명확한 경고 신호를 무시하고, '성실함'이라는 사회적 미명 아래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이러한 '인지왜곡'과 '합리화'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약해 보이면 안 된다'는 강한 압력을 주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프면 쉴 권리보다, 아파도 버티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집단무의식'이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요?
결국, 이 비극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언제쯤 '아프면 쉬는 것이 당연하다'는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필자 역시 종종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몸을 혹사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괜찮은 걸까요? 우리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한 채, '나는 강하다'는 착각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몸과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