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6월 10일 수요일
발행 2026-06-09
한겨레 사회

‘상식적 분노’의 그림자, 집단사고의 덫

‘상식적 분노’의 그림자, 집단사고의 덫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시위가 잠실 개표소 앞에서 닷새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2030세대가 ‘상식적 분노’를 표출하며 투명한 해명과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나선 모습은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우리는 무엇에 분노하고, 그 분노는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어쩌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속에는 여러 겹의 '인지왜곡'이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심리학에서 '인지왜곡'이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신념이나 감정에 따라 정보를 주관적으로 해석하거나 변형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인지치료의 창시자 아론 벡(Aaron Beck) 박사는 이러한 왜곡된 사고방식이 우울증과 불안의 핵심 원인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 즉 '자동적 사고'가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죠. 가령, 한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을 때, 우리는 '나를 무시하는구나' 하고 지레짐작하며 화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이처럼 '흑백논리'(모든 것을 좋거나 나쁨으로만 판단), '과잉 일반화'(한두 번의 경험으로 모든 상황을 단정), '개인화'(남의 문제까지 자신의 탓으로 돌림) 같은 다양한 인지왜곡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이번 시위에 참여한 이들이 느끼는 '상식적 분노'는 어쩌면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무능력에 대한 좌절감에서 비롯된 정당한 감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노가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악마화'나 '재앙적 사고'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건강한 문제 제기를 넘어선 '인지왜곡'의 영역으로 들어설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충분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상식적 분노'가 집단적인 행동으로 표출될 때, 우리는 또 다른 심리적 현상인 '집단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개념을 통해, 집단이 의사결정을 할 때 구성원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억제하고 집단의 응집력을 유지하려는 압력 때문에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의 '피그스만 침공' 실패 사례를 분석하며, 집단의 조화와 만장일치를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합리적인 대안의 모색을 방해하고 결국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필자는 대학 시절, 조별 과제를 할 때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조원이 명확히 잘못된 방향을 주장하는데도, 아무도 나서서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고 결국 그 방향대로 진행했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얻었던 기억입니다. '괜히 분위기를 망치지 말자', '혼자 튀지 말자'는 암묵적인 압력이 비판적인 사고를 마비시켰던 것이죠. 이러한 침묵은 결국 집단의 오류를 키우는 씨앗이 됩니다. 이번 시위에서도 '상식적 분노'라는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혹시라도 그 안에 숨겨진 다양한 관점이나 비판적 목소리가 억압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라는 강력한 소속감은 큰 힘을 발휘하지만, 동시에 다른 의견을 '틀린 것'으로 치부하며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상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내' 상식이 아닌, '우리'의 상식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요? 아마도 그것은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오가며, 비판적 사고가 존중받을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입니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보며, 우리 사회가 얼마나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상식'을 주장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때로는 이 '상식'이라는 잣대가 오히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게 만들거나,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방어기제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연 충분히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나의 '상식'이 누군가에게는 '비상식'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입니다.
‘상식’의 이름으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