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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목요일
발행 2026-06-10
한겨레 사회

참정권의 상실감, 왜 이토록 아픈가

참정권의 상실감, 왜 이토록 아픈가
얼마 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서울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일이 벌어졌고, 이를 지켜본 많은 이들, 특히 대학생들은 이번 사태를 '참정권 침해'로 규정하며 거리에 나서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분노하게 하고, 단순한 행정 착오로 치부될 수 없는 깊은 상실감을 안겨주는지 심리적으로 탐색해 보았습니다. 우선,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에서 '인지왜곡'이라는 심리적 현상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인지왜곡'은 아론 벡(Aaron Beck)이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이 상황을 비합리적이거나 비정확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이 사태를 '단순한 행정 실수', '실무자의 부주의' 정도로 축소 해석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마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며 애써 자신과 타인의 불편한 감정을 덮으려는 시도와 같습니다. 하지만 유권자, 특히 젊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참정권 침해'라는 중대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는 마치 '삐뚤어진 거울'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동일한 현실을 보더라도, 각자의 신념과 가치, 그리고 처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인지적 간극이 깊어질수록 서로의 입장과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불신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 회피와 해명 과정에서 우리는 '방어기제'의 작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방어기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가 체계화한 개념으로, 개인이 불안이나 죄책감 같은 불쾌한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심리적 전략들을 말합니다. '부정'이나 '합리화'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문제가 아니다', '절차상 어쩔 수 없었다', '관례였다' 등의 설명은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방어막'일 수 있습니다. 마치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내가 안 보면 없어질 거야'라며 눈을 가리는 행동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어기제는 일시적으로는 불편한 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타인과의 신뢰를 깨뜨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는 단순히 한 표를 행사하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개인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사회 변화에 참여하며, 국가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이러한 기회가 부당하게 박탈되었을 때 오는 상실감은 개인의 존엄성마저 훼손되는 듯한 깊은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특히 '절차적 공정성'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게는,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사태가 단순히 물량이 부족했던 해프닝이 아니라, 시스템의 '무능함'을 넘어 '무관심'과 '배제'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과 연결된 깊은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필자는 이 사태를 보며 우리 사회가 '투명성'과 '책임감'이라는 기본 원칙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됩니다. 시스템의 오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오류를 인정하고, 책임 있는 자세로 투명하게 해명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야말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 공동체가 계속해서 '인지왜곡'과 '방어기제' 뒤에 숨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결국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투표의 의미를 스스로 훼손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부끄럽지 않나'라는 젊은이들의 외침이 단지 순간의 분노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에 대한 깊은 '애정'과 '기대'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입니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가 시작될 것입니다.
신뢰는 깨지기 쉽고, 회복하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