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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6월 12일 금요일
발행 2026-06-11
경향신문 사회

우리는 왜 '희생양'을 만드는가

우리는 왜 '희생양'을 만드는가
지난달 충남 천안의 한 야외쉼터에서 중학생 7명이 지적 장애 또래 학생을 집단 폭행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기사 속에는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을 발로 차고 밟는 것은 물론, 옷을 벗기는 끔찍한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무거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한창 자아를 형성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배우는 시기의 아이들이 왜 이토록 잔혹한 행동을 했을까, 그리고 그 집단 속에서 개인의 윤리 의식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하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종종 개별 가해 학생들의 '악마성'에 주목하곤 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은 이보다 더 복잡한 인간 심리의 작동 방식에 주목합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모인 집단에서 벌어지는 폭력에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희생양 메커니즘'이란 집단 내부에 쌓인 갈등이나 불안, 혹은 응집력을 강화하기 위해 특정 개인을 지목하여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투사하고 공격함으로써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오래전부터 인류 사회에 존재해 온 이 '희생양' 의식을 분석하며, 집단이 위기에 처하거나 불안정할 때 내부의 적대감을 외부로 돌려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풍년이나 평화를 기원하며 동물을 제물로 바치거나, 마녀사냥처럼 특정 소수자를 집단의 불행에 대한 원인으로 지목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아마도 이 중학생 집단은 자신들 내부의 알 수 없는 긴장이나 불안감을 해소할 출구를 찾았을 것이고, 지적 장애를 가진 친구는 그들에게 가장 쉽고 무방비한 '희생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 의식적으로 '우리가 한 행동은 옳지 않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집단 속에서 그 목소리는 쉽게 묻혔을 겁니다. 그렇다면 가해 학생들은 왜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까요? 혹은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을까요? 여기에는 '인지 왜곡'과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지 왜곡'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맞춰 왜곡하여 해석하는 심리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쟤는 원래 좀 모자라니까 우리가 놀려도 괜찮아'라거나 '우리가 하는 건 그냥 장난이야, 저 친구도 별 생각 없을 거야'와 같이 자신들의 행동을 축소하고 피해자를 비인간화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재단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아론 벡(Aaron Beck)이 주장한 '자동적 사고'와도 연결됩니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비합리적인 생각들이 현실 인식을 지배하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합리화'는 용납하기 어려운 충동이나 행동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어기제입니다. '어차피 다른 애들도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이상하잖아', '쟤가 먼저 우리를 짜증 나게 했어'와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친구의 반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그 반응을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집단 안에서는 개개인의 윤리적 판단이 흐려지고, 서로의 왜곡된 인식을 공유하며 잘못된 행동을 '정상화'하는 위험한 과정이 벌어지곤 합니다. 영화 '파리대왕'에서 문명 사회에서 고립된 아이들이 점차 야만적인 폭력 집단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이러한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장난 같았던 행동들이 점차 통제 불능의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개인이 집단 속에 매몰될 때 얼마나 쉽게 도덕적 감각을 상실할 수 있는지를 경고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과 '인지 왜곡', '합리화'가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에서 얼마나 자주 작동하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필자는 이 사건이 단순히 일부 학생들의 일탈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의 작은 집단들, 예를 들어 학교나 직장, 심지어는 온라인 커뮤니티 속에서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희생양'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집단의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의 판단을 흐리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있고, 동시에 누군가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늘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의 침묵이 누군가의 고통을 방조하는 것은 아닌지, 집단의 왜곡된 시선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우리 안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더 나은 '우리'를 상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