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믿음, 그 위험한 유혹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개표소 앞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부정선거 재선거'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주말을 앞두고 그 규모는 6천여 명으로 늘어났고, 심지어 이곳을 지나던 핸드볼 대표팀 선수들과 기자들을 향한 폭행까지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이 광경을 보며 필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집단 행동의 이면에는 어떤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우리는 왜 때때로 이성적인 판단을 유보하고, 특정 믿음에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것일까요? 아마 그 답은 '집단사고'라는 개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집단사고는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가 제시한 개념으로,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합리적인 의사결정보다 '집단의 화합'과 '동조'를 우선시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집단 내에서 반대 의견이 묵살되거나, 외부 정보가 걸러지고, 결국 집단 전체가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지요. 미국의 피그스만 침공 실패 사례나 챌린저호 폭발 사고 등이 대표적인 집단사고의 비극으로 거론됩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소위 '끼리끼리' 모여 자신들의 생각만 옳다고 믿는 동호회나 특정 정치 성향 커뮤니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부정선거'라는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 이러한 믿음이 수많은 사람을 한곳으로 모으고, 물리적인 행동으로까지 이끌어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인지왜곡'과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지왜곡은 아론 벡(Aaron Beck)이 강조했듯, 개인이 현실을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확증 편향'처럼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 대표적입니다. '선택적 추상화'는 특정 부분만 확대 해석하여 전체를 오도하는 것이고요. 시위 참여자들은 아마도 '부정선거'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나 소문에만 집중하여, 그것이 전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인지왜곡을 겪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지왜곡이 일단 자리를 잡으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합리화'라는 방어기제가 작동합니다. 프로이트(Freud)가 말했듯, 합리화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정당화하는 무의식적인 과정입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이다', '부정한 권력에 맞서는 정의로운 행동이다'와 같은 명분을 내세워, 개표소를 봉쇄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마저도 스스로 납득하고 옹호하는 것이지요. 이는 마치 여우가 신포도를 먹지 못하고 '어차피 신 포도였어'라고 합리화하는 이솝 우화의 한 장면과도 같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부정적인 결과를 외면하고, 그럴듯한 '대안적 진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결국, '집단사고'는 개개인의 '인지왜곡'을 강화하고, 왜곡된 믿음은 다시 '합리화'를 통해 비합리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집단 외부의 대상은 쉽게 '희생양'이 됩니다. 자신들의 불만과 분노를 투사할 대상을 찾아, 그들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하고 공격하는 것이지요. 핸드볼 대표팀이나 기자들을 향한 폭력도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의 비극적인 발현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시위 현장을 지나던 불특정 다수였을 뿐인데도, 집단의 분노를 해소할 대상으로 지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다양한 형태의 '집단사고'와 '인지왜곡'이 만연해 있는 듯 보입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특정 집단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너무나 쉬워진 시대입니다. 필자는 우리 스스로가 이러한 심리적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우리 안의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마음은 없는지,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찰은 언제나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확증 편향의 거울을 들여다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