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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5일 월요일
발행 2026-06-14
경향신문 사회

보이지 않는 상흔: 트라우마가 남긴 그림자

보이지 않는 상흔: 트라우마가 남긴 그림자
어느 날 갑자기,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비극으로 무너져 내리곤 합니다. 3년 전,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던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유가족과 생존자 90% 이상이 여전히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행정안전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발표는 그날의 상흔이 단순한 기억을 넘어, 생생한 현실로 남아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눈에 보이는 상처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깊이 우리를 잠식하는 '보이지 않는 상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이 참사처럼 생명을 위협하거나, 극심한 공포를 안겨주는 사건들은 단순한 고통을 넘어 '트라우마'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트라우마'는 19세기 프랑스 정신과 의사 피에르 자네(Pierre Janet)가 처음으로 정신적 외상 개념을 정립하며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적 경험이 마치 우리 정신의 한 부분을 찢어 놓는 것처럼 작용하여, 기억이 단편적으로 조각나고, 심지어는 의식에서 분리되어 버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마치 잘 만들어진 도자기가 외부 충격으로 산산조각 나버리듯, 우리의 정신도 감당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흩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오랜 시간 지속되며 우리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칠 때, 우리는 이를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즉 'PTSD'라고 부릅니다. PTSD는 단순한 '충격'이나 '슬픔'과는 다릅니다. 이는 마치 시한폭탄처럼, 사건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 순간을 '재경험'하게 만듭니다. 불쑥 떠오르는 섬광 기억('플래시백')이나 악몽,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모든 것을 필사적으로 '회피'하려는 행동은 우리가 흔히 아는 증상들입니다. 또한,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거나, 늘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과각성' 상태에 놓이기도 합니다.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이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도 포탄 소리에 반응하듯, 우리의 신경계는 여전히 비상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의 '셸 쇼크'(shell shock)나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의 '전투 피로'(battle fatigue)를 통해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진단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재난 이후 피해자들에게 "힘내세요", "시간이 약입니다"와 같은 위로의 말을 건네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까요? 필자가 임상 현장에서 만난 많은 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고통이 더욱 깊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삶을 잠식해 들어가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트라우마는 잠시 숨을 고를 뿐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상흔'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우리 모두가 재난의 피해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상으로의 회복'입니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에게 '정상'이란 그 이전의 삶과는 다른 의미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회복'이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 윌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직면하며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오열하는 장면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상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이러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과 '지속적인 지지'일 것입니다. 그들의 고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세심한 관심과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신적 재난'입니다. 상처는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보이지 않는 상흔'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그 아픔을 함께 안아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상흔에 귀 기울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