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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6월 17일 수요일
발행 2026-06-16
경향신문 사회

무심한 카메라가 남긴 상흔

무심한 카메라가 남긴 상흔
성매매 단속 과정에서 경찰에게 나체를 촬영당하고 그 사진이 단체 채팅방에 유포된 여성 김은경 씨(가명)에게 국가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1심에서 일부 패소했던 부분까지 뒤집힌 2심 판결은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의 깊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한 개인의 존엄이 무너지는 순간과 그 상처가 남긴 깊은 심리적 잔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국가 배상'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사건에서 어떤 심리적 단면들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요? 아마도 '트라우마'와 '방어기제'라는 두 가지 개념이 이 질문에 답하는 실마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먼저 '트라우마'입니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충격적인 경험'을 넘어,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위협이나 고통을 겪은 후 발생하는 심리적, 신체적 반응을 일컫습니다. 사건 발생 시 우리의 뇌는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 순간에 갇히게 됩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피터 레빈(Peter A. Levine)은 그의 저서 '몸은 기억한다'에서 트라우마가 뇌뿐 아니라 몸에 각인되어, 사건이 끝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신체적, 정서적 반응을 유발한다고 설명합니다. 마치 교통사고로 심하게 찌그러진 자동차가 사고 후에도 계속 경적을 울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거나, 특정 장소나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그 예입니다. 김은경 씨의 경우, '경찰'이라는 공권력에 의해 '나체 촬영'이라는 극심한 인격 침해를 당했고, 그 사진이 '유포'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수치를 넘어선 존재론적 위협이었을 것입니다.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녀의 삶은 아마도 그 사건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왔을 것입니다. 이처럼 트라우마는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그 후유증은 예상보다 훨씬 길고 깊게 이어집니다. 다음으로 '방어기제'입니다. 방어기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처음 제시하고 그의 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가 체계화한 개념으로, 개인이 불안이나 위협을 느낄 때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심리적 전략을 말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무서운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가리는 것처럼, 현실을 왜곡하거나 감정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 사건에서 경찰들의 행동을 보면, 우리는 그들 내부의 어떤 '방어기제'가 작동했는지 질문하게 됩니다. '성매매 여성은 그래도 된다'는 식의 '탈인간화'는 자신들의 비윤리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합리화' 방어기제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을 줄지 '부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는 '공무 수행 중이었으니 괜찮다'는 식의 자기 기만이 섞인 '합리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 집단 내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되거나 강화될 때, 개인의 도덕적 판단을 마비시키는 '집단사고'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특별하고, 우리의 행동은 정당하다'는 믿음은 종종 윤리적 경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는 순간, 그들의 내면에서는 가장 위험한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필자는 경찰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되고 스트레스가 많은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명분도 한 개인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금전적 배상을 넘어, 공권력의 오남용이 개인에게 어떤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지, 그리고 그 상처가 얼마나 오랫동안 아물지 않는지를 우리 사회에 다시금 일깨워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쉽사리 '부정'하거나 '합리화'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은 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방어기제' 뒤에 숨겨진 진정한 감정과 책임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상처받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일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 우리에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