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절망'이 될 때

지난 17일,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 현장에서 한 30대 남성이 흉기를 든 채 자신을 해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극한의 분노와 절망을 표출했고, 양손에 흉기와 태극기를 든 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접한 필자의 마음은 무겁고 또 복잡했습니다. 한 개인이 왜 이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을까, 그리고 그를 그 지점까지 몰아간 심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사건을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 있을까요? 아마도 우리는 이면의 복잡한 심리적 역동을 들여다봐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이 남성의 행동에서 '인지왜곡'과 '집단사고'라는 두 가지 중요한 심리적 개념을 떠올립니다. 우선 '인지왜곡'이란, 개인이 현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신념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거나 잘못 해석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작은 실수 하나에도 '나는 완벽하게 실패했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흑백논리'라는 인지왜곡의 한 형태입니다. 인지치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론 벡(Aaron Beck)은 이러한 왜곡된 사고방식이 우울증과 불안을 유발하고 유지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부정선거'라는 특정 신념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외부의 객관적인 증거나 반박이 마치 '거짓 정보'나 '음모'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한쪽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 사람이 다른 색을 본 적이 없으니, 그 색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개인의 '인지왜곡'은 '집단사고'라는 더 큰 파도 속에서 더욱 거대해질 수 있습니다. '집단사고'는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가 제시한 개념으로, 응집력이 강한 집단 내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보다 만장일치를 추구하려는 경향 때문에 비판적인 사고나 대안적 의견 제시가 억압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집단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옳다는 환상에 빠지고, 외부의 비판이나 다른 관점은 무시하거나 왜곡하기 쉽습니다. 이번 시위 현장에서 태극기를 들고 자해를 시도한 남성의 행동은 '부정선거'라는 신념이 집단 내에서 강력하게 공유되고 강화되면서, 개인의 현실 판단 능력이 약화되고 극단적인 행동까지 이끌어낸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작은 눈덩이가 산비탈을 굴러 내려오면서 점점 커져 거대한 눈사태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집단 내부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확증 편향'은 '우리'의 시야를 좁히고,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이 남성의 자해는 어떤 심리적 의미를 가질까요? 이는 극심한 절망과 무력감의 표현이자, 동시에 최후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습니다. 방어기제는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충동이나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심리적 전략들을 말합니다.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는 이러한 방어기제들이 자아를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지만, 때로는 현실을 왜곡하거나 역기능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 남성의 자해는 아마도 자신의 신념이 무시당하고 세상이 자신의 주장을 외면한다고 느낄 때,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좌절감과 분노가 극대화되어 신체적 고통을 통해 이를 해소하거나, 또는 세상의 관심을 강렬하게 촉구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필자 역시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좌절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던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의 무력감과 절망이 얼마나 사람을 비이성적인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 믿음'이 곧 '진실'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신념이 때로는 '인지왜곡'과 '집단사고'의 산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열어두어야 합니다. '우리' 안의 작은 의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른 관점을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복잡한 세상을 한 가지 색깔로만 보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깔과 그림자를 함께 인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른 목소리를 듣는 용기가 '우리'를 지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