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6월 19일 금요일
발행 2026-06-18
BBC News World

소년의 총성, 부모의 그림자

소년의 총성, 부모의 그림자
2023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위치한 블라디슬라브 리브니카르 학교에서 13세 소년이 총기를 난사해 여덟 명의 여학생과 한 명의 남학생, 그리고 학교 경비원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이 소년의 부모에게 재판에서 징역형이 선고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소식을 접하며 필자의 마음은 무겁고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찹니다. 우리는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참극 앞에서 무엇을 느끼고, 또 무엇을 찾으려 할까요?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라는 질문일 것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우리는 이 거대한 아픔을 감당하기 위해 어떤 대상에게 이 감정을 쏟아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사'라고 부릅니다.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이나 외부 대상에게 돌리는 방어기제이지요.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워 자신의 것으로 보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입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투사를 자아가 불안을 다루는 방식 중 하나로 보았습니다. 이 소년의 총성이 불러온 충격과 슬픔, 그리고 분노는 너무나 거대해서, 우리 사회는 이 모든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어떤 '그릇'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소년의 부모에게 내려진 징역형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물론 법적인 책임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필자는 이 사건에서 우리 사회가 작동시키는 '희생양 메커니즘'의 그림자를 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사회가 위기에 처하거나 집단적 폭력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공동체는 자신들의 갈등과 폭력을 한 명의 '희생양'에게 전가함으로써 일시적인 평화를 되찾으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세르비아 사회가 겪은 충격과 집단적 슬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강렬한 열망은 어쩌면 소년의 부모를 향한 분노로 응축되어 터져 나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부모는 가장 가까운 보호자이자 양육자였기에, 모든 책임의 화살이 그들에게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처벌함으로써 사회는 일시적으로 '정의가 실현되었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어떤 '이해'를 얻었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 '희생양'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혹시 더 깊은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소년의 부모 역시 자신들의 역할을 '부정'하거나 '합리화'하려 했을지 모릅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아이는 원래 그런 아이였다', '나도 모르게 벌어진 일이다'와 같은 생각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일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에 이르는 다섯 단계를 이야기하며 그 첫 단계로 '부정'을 언급했습니다. 비단 죽음뿐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 앞에서 인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일단은 '아니야'라고 부정하며 자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합리화'를 통해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정당화하려 합니다. 이러한 방어기제들은 개인을 보호하는 동시에,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을 한두 가지 심리 개념으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사건이 단순히 '나쁜 부모'나 '나쁜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들여다봐야 할 더 깊은 그림자를 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발달 과정에서 형성되는 '애착 유형'은 이후 성인이 되어 세상을 인식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존 볼비는 애착 이론을 통해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사회성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했습니다. 만약 아이가 불안정하거나 혼란스러운 애착 관계를 경험했다면, 이는 내면에 깊은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습니다. 소년의 내면 깊은 곳에는 어떤 불안과 고통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부모와 주변 환경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이 질문들은 쉽사리 답을 찾을 수 없는 미궁과 같습니다. 어쩌면 이 비극은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거대한 거울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그 거울에 비친 끔찍한 소년의 모습을 보며 경악하지만, 동시에 그 거울이 우리 사회의 어떤 병든 단면을 비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인지 왜곡'이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편향된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저런 부모니까 저런 자식이 나왔지'라는 단순한 인지 왜곡에 빠져 안도할 때, 우리 사회의 더 큰 구조적 문제나 복잡한 심리적 요인들을 간과할 위험이 있습니다. 마치 빙산의 일각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사건 앞에서 우리는 단순히 누군가를 비난하고 처벌하는 것을 넘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 비극을 '누군가의 잘못'으로만 치부하며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이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마음의 벽을 쌓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비극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 역시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사건 앞에서 손쉬운 비난에 동참하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필자는 잠시 멈춰 서서,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 본성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들여다보려 노력합니다. '진정한 이해'는 쉬운 답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질문에서 시작될 때가 많습니다.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 볼 용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