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6월 20일 토요일
발행 2026-06-19
한겨레 사회

‘내 생각만 옳다’는 확신, 그 뒤편의 그림자

‘내 생각만 옳다’는 확신, 그 뒤편의 그림자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핸드볼경기장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 사회에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지방선거 개표소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경기장 출입을 막아선 시위로 인해, 한 직원이 무려 보름 넘게 건물 안에 고립되어 매점 식료품으로 버텨야 했다는 소식은 충격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안겨주었지요. 물리적인 고립뿐 아니라, 이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 또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끌었을까요? 필자는 이 사건에서 인간 심리의 깊은 그림자, 바로 '인지왜곡'과 '집단사고'의 모습을 엿봅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신념이나 기대에 맞춰 현실을 재단하곤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왜곡'이라고 부릅니다. 인지왜곡은 개인이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합리적이거나 부정확한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인지행동치료의 창시자인 아론 벡(Aaron Beck) 박사는 인간이 자신의 신념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선택적으로 해석하거나, 특정 사건의 의미를 과장 또는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치 특정 색깔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그 색깔로 보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도 이러한 '인지 필터'가 존재합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의 확신은 아마도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강한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과정에서 더욱 강화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옳은데 왜 다른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가?' 하는 생각은 이러한 인지왜곡의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지왜곡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집단적으로 발현될 때 더욱 위험한 양상을 띤다는 점입니다. 필자는 이 사건에서 '집단사고'의 씁쓸한 단면을 발견합니다. 집단사고는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가 제시한 개념으로,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합리적인 의사결정보다는 집단의 '화합'이나 '만장일치'를 추구하여 비판적인 사고를 억압하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가 일단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운 것처럼, 집단 내에서는 비판적인 의견이 묵살되고, 외부 정보는 왜곡되며, 자신들의 결정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환상적 합의'가 형성됩니다. 개표소 봉쇄 시위의 경우, '부정선거'라는 공동의 신념 아래 모인 집단은 그들의 행동이 가져올 법적, 윤리적 문제나 타인에게 미칠 피해를 간과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립된 직원의 존재는 아마도 집단적 목표 달성이라는 거대한 그림 속에서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개인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비합리적인 행동이 집단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심지어 '정의로운 행위'로 둔갑하는 순간, 우리는 집단사고의 어두운 면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필자는 이 사건을 보며 '우리' 모두가 이러한 심리적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우리 또한 특정한 집단에 속해 있을 때, 그 집단의 생각에 동조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자신이 믿는 바가 진실이라는 강한 확신에 사로잡혀 다른 가능성을 외면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행동이 과연 합리적이고 윤리적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가 속한 집단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닌지, 나의 신념이 너무 견고하여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