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에 갇힌 영혼들, 트라우마는 왜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가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2014년 세월호 참사 생존자였던 A씨가 최근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생존 10명 중 3명이 '심각한 신체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으니, 이 소식은 우리에게 잊고 있던 아픔을 다시금 환기시킵니다. 필자 역시 가끔 과거의 어떤 순간에 발이 묶인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 막연히 생각하지만, 어떤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고 영혼에 깊이 각인되어 남습니다. 마치 굳은살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이를 심리학에서 '트라우마'라고 부릅니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끔찍한 기억이 아니라,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뇌가 그 경험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부서진 파편처럼 정신에 박혀버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 거울이 깨지면서 수많은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박히는 것처럼, 트라우마는 우리의 감정, 생각, 행동, 심지어 신체 반응까지 지배하려 듭니다. 이 개념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이 겪었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사회적으로 부각되면서 더욱 깊이 연구되었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일찍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을 '반복 강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끔찍한 기억을 자꾸 되감을까요? 아마도 우리의 무의식은 그 사건을 이해하고 통합하려는 필사적인 시도를 계속하는 것일 겁니다. 마치 고장 난 레코드판이 같은 부분만 반복해서 재생하듯,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은 '그날'의 기억, 감각, 감정에 끊임없이 사로잡히곤 합니다. 몸은 분명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데, 마음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갇혀버리는 '해리' 현상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오랜 감옥 생활 끝에 출소한 브룩스가 자유로운 외부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처럼, 너무나 큰 충격을 겪은 이들은 '그날'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지도, 새로운 세상에 온전히 발붙이지도 못하는 고통을 겪습니다. 안전하다고 느꼈던 곳이 실제로는 끔찍한 재난의 현장이었던 이들에게,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한 '자기대상'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생존자들에게 어떤 '애착 유형'을 보여주었을까요? 재난 이후 필요한 것은 '괜찮아질 거야'라는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함께 있어줄게'라는 든든한 '안정 기지'가 되어주는 일입니다. 상처 입은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기억하려는 노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상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지라도, 최소한 덧나지 않고 아물어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우리가 그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더 이상 '미안함'이라는 감옥에 갇히지 않고 함께 치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하는 '공동의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날'을 겪은 이들의 삶은 결코 '그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삶이 '그날'에 영원히 갇혀버리지 않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습니다. 그 흉터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기억할 것인지, 그리고 그 흉터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우리 모두가 깊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날' 이후의 삶,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