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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6월 27일 토요일
발행 2026-06-26
경향신문 사회

보이지 않는 상처, '트라우마'의 무게

보이지 않는 상처, '트라우마'의 무게
지난 26일, 행정안전부는 10 29 이태원 참사 당시 구조에 참여했던 한 상인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숨진 것을 공식적인 참사 희생자로 인정했습니다. 이태원 해밀톤호텔 주변에서 주점을 운영하던 백모씨는 그날의 참혹한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구조 활동에 나섰지만, 결국 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어쩌면 우리 주변에 아직도 숨겨진 채 고통받는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리는 흔히 '트라우마'라고 하면 신체적 상해나 직접적인 경험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에서 말하는 '트라우마'는 단순히 몸의 상처를 넘어선, 정신적 외상을 의미합니다. 이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겪는 심리적 반응으로,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깊은 고통을 유발합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초기 '신경증' 연구에서 무의식적 갈등과 과거의 '상처'에 주목했듯이, 트라우마는 우리의 의식 깊숙이 박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삶을 지배하곤 합니다. 마치 아름다운 도자기에 생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처럼,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그 상인이 겪었을 고통은 단순히 '목격'으로 치부할 수 없는, 마치 그 자신이 그 참사 한가운데 있었던 것과 같은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백모씨의 사례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이'의 고통이라는 점에서 '대리 트라우마' 또는 '간접 트라우마'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대리 트라우마'는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거나, 타인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듣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그 고통을 마치 직접 겪은 것처럼 느끼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소방관, 경찰관, 의료진과 같은 구호 인력은 물론, 재난 현장의 목격자나 심지어 관련 뉴스를 반복적으로 접하는 이들까지도 '대리 트라우마'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필자 역시 상담 현장에서 내담자의 깊은 고통을 듣고 밤잠을 설쳤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의 아픔이 마치 나의 아픔처럼 느껴져 힘겨웠던 순간들이 있었지요. 그는 왜 그토록 고통받았을까? 그저 생존자들을 돕고 지켜봤을 뿐인데 말입니다. 아마도 그 순간, 그의 마음은 고통받는 이들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을 테지요. 인간에게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이 때로는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진실을 우리는 마주하게 됩니다. 이태원 참사는 우리 사회 전체에 깊은 '집단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었고, 또 수많은 이들이 현장을 목격하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백모씨의 희생자 인정은 단순한 행정적 결정이 아닙니다. 이는 사회가 '보이지 않는 상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중요한 시그널입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기억하고 애도하는 과정은 '집단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미래의 재난에 대비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야 하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아마도 그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가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 아닐까 필자는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필자도 가끔은 이 세상의 고통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작은 위로의 손길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아픔을 더 잘 보듬어 안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홀로 힘겨워하는 이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주변의 '보이지 않는 상처'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들여다보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