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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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6월 28일 일요일
발행 2026-06-27
경향신문 사회

길고양이 논쟁, 공존은 '투사'의 그림자를 넘어서야

길고양이 논쟁, 공존은 '투사'의 그림자를 넘어서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길고양이 급식 금지를 위반할 경우 벌금 3만원과 주차 제한을 경고하는 운영규정을 내세워 논란이 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급식을 금지하고, 적발 시 제재를 가하겠다는 내용이지요. 이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문득,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리'와 '그들'의 갈등 양상을 떠올렸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과 가치가 충돌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쳐 '공존'이라는 해답을 찾아갈 수 있을까요? 아파트 단지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체에서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가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이때 우리는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집단사고'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집단사고'를 집단의 응집력이 너무 강해 합리적인 의사결정보다 만장일치에 대한 압력이 우세해지는 현상으로 설명했습니다. 즉,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워지고, 집단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이지요. 아마 이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에서도 '길고양이로 인한 불편함 해소'라는 명분 아래, 다른 관점이나 대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특정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을 수 있습니다.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행위를 단순히 '불편을 야기하는 행위'로만 바라보게 만드는 '인지왜곡'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요? 고양이의 생태나 '캣맘'들의 선의는 배제된 채, 특정 정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 말입니다. 마치 거대한 코끼리를 만진 장님들이 각자 만진 부위만을 가지고 코끼리 전체를 판단하듯, 우리는 때때로 문제의 한 단면만을 보고 전체를 재단해버리곤 합니다. 이러한 '집단사고'와 '인지왜곡'이 심화될 때, 공동체 내부의 갈등은 종종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사회적 긴장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집단이 그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모든 문제를 전가하는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불편함, 예를 들어 위생 문제나 소음, 또는 알 수 없는 갈등의 원인을 '캣맘'이라는 특정 집단에게 쉽게 귀인하고 비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고대 사회에서 마을에 전염병이 돌거나 흉년이 들면, 특정인을 지목하여 모든 불운의 원인으로 몰아세우고 추방하거나 처벌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캣맘'들이 제공하는 사료 때문에 주변이 더러워지고 쥐가 끓는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위생 관리는 중요하지만, 과연 그 모든 문제가 '캣맘'들만의 책임일까요? 어쩌면 '캣맘'들은 공동체의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화하고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편리한 '대상'이 된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이나 갈등은 우리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곤 합니다. 이때 우리는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종종 '방어기제'를 사용합니다. '투사'는 자신의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나 생각을 타인에게 돌리는 방어기제입니다. '캣맘'들을 비난하는 일부 주민들의 마음속에는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더럽혀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감정이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캣맘'들에게 '투사'하여, 마치 그들이 모든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우리는 우리가 가진 불편함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그들'을 만들어내고,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려는 심리적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길고양이 급식 논쟁은 단순히 동물 보호와 주민 편의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이는 '우리' 안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루고, '우리'와 다른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포용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보고, 상대방의 행동 뒤에 숨겨진 동기나 감정을 이해하려는 작은 시도들이야말로 갈등의 벽을 허무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공존'을 원한다면, '내 안의 불편함'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투사'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복잡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희생양'을 찾아 헤매는 악순환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갑니다. 그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배척하기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작은 불편함이 큰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 안의 그림자를 볼 용기가 공존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