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분노의 그림자, '희생양'이 필요한 이유

새벽 공항, 한 남자가 고개 숙인 채 입국장을 나섭니다.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와 함께, '책임져라!', '사퇴하라!'는 날 선 외침이 귓전을 때립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 좌절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안고 돌아온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귀국길은 그야말로 '고성의 입국장'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슴 졸이며 응원했던 경기의 패배는 우리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그 실망감은 곧 분노가 되어 한 사람을 향해 쏟아져 내렸습니다.
필자는 이 장면을 보며 인간 심리의 흥미로운 단면, 바로 '희생양 메커니즘'을 떠올립니다. '희생양 메커니즘'은 고대부터 인류 사회에 존재했던 본능적인 방어기제 중 하나입니다. 한 집단 내에서 갈등이나 긴장, 혹은 집단적 좌절감이 커질 때, 그 에너지를 해소하기 위해 특정 개인이나 소수 집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이러한 현상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집단의 응집력을 강화하는 역설적인 기능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우리'의 내부 갈등을 잠시 잊고 '저 사람'을 공격함으로써 일시적으로나마 평화와 통합을 도모하는 것이죠.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국가적인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축구팀의 실패는 우리 사회 전체에 커다란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이 좌절감은 쉽게 분노로 전환되곤 합니다. '우리가 왜 졌을까? 도대체 누구 때문인가?' 하는 질문이 던져질 때, 그 복잡한 원인을 분석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가장 눈에 띄는 대상을 찾아 모든 비난을 쏟아붓는 것이 훨씬 쉽고 간편한 방법이 됩니다. 아마도 그때 우리에게는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일 겁니다. 모든 실패의 짐을 홀로 짊어지고 비난의 화살을 맞는 한 사람이 있어야, 집단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금 '우리는 괜찮다'는 환상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에는 '투사'라는 심리적 방어기제도 깊이 관여합니다. '투사'는 자신의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이나 충동, 특성을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 양 외부로 던져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월드컵 패배로 인한 우리의 분노, 실망감, 심지어는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나' 하는 내면의 죄책감까지도, 이 모든 것을 감독이라는 한 인물에게 '투사'하는 것이죠. 우리가 직접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그에게 던져버림으로써, 우리는 잠시나마 그 감정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듯합니다. 여기에 '인지 왜곡'까지 더해져 상황은 더욱 단순해집니다. '감독이 모든 것을 망쳤다'는 식의 흑백논리적 사고나, 한두 번의 실수를 전체 실패의 유일한 원인으로 과장하는 '과잉 일반화'가 우리 판단을 흐리게 만들곤 합니다.
필자는 학창 시절, 조별 과제에서 늘 적극적이지 못했던 자신을 보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조원 모두가 함께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저는 무의식적으로 가장 눈에 띄게 실수가 많았던 친구 한 명에게 모든 불만을 돌렸습니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더 잘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필자 스스로의 부족함도 외면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에게 '투사'했던 것은 아마도 제 안에 있던 '책임 회피'와 '부정'의 감정이었을 겁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크고 작은 '희생양'들이 만들어지곤 합니다. 회사에서 실적이 부진할 때 특정 팀원에게 모든 책임을 묻거나, 가정 내 불화의 원인을 한 아이에게만 돌리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물론 리더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책임의 무게가 집단 전체의 좌절감을 해소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전가될 때, 우리는 과연 건강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 사람에게 모든 비난을 퍼붓는 것이 정말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지, 혹은 그저 우리의 불편한 감정만을 잠시 덮어두는 행위는 아닌지, 우리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희생양'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희생양'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합니다. '우리' 안의 불편한 감정들을 직시하고, 그 감정들을 건강하게 다루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저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테니까요. 우리 안의 분노와 좌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성숙하게 다룰 수 있을지,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과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분노 속에서 '우리'의 그림자를 발견할 때, 진정한 성장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