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혐오를 '놀이'로 소비할까?

뉴스에서 우리는 또 한 번 불편한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서울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경기 중 상대팀인 광주제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같은 구호를 외쳐 큰 논란이 된 사건입니다. 언뜻 '놀이'처럼 들리는 이 말들 속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고, 이는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밈'처럼 소비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이 아이들로 하여금 역사적 아픔을 '놀이'로 만들게 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런 '놀이'에 그리도 쉽게 동참하거나, 혹은 무관심하게 되는 걸까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심리적 개념 중 하나는 바로 '방어기제'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처음 제시한 이 개념은, 개인이 불안이나 위협적인 생각,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심리적 전략을 말합니다. 혐오를 '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행위는 어쩌면 불편한 진실이나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방어일 수 있습니다.
특히 '합리화'와 '부정'이 두드러집니다. '합리화'는 자신의 비합리적인 행동이나 감정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정당화하는 것이죠. "그냥 장난이었어요", "다들 그렇게 하니까요" 같은 변명은 이 합리화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부정'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나 감정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혐오 표현이 담고 있는 역사적 상처와 폭력성을 '별것 아닌 놀이'로 치부하며 외면하는 태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더 나아가 이런 현상은 '집단사고'와도 연결됩니다. 사회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고, 만장일치를 추구하는 경향을 '집단사고'라고 설명했습니다. 야구부 학생들 사이에서 특정 구호가 '밈'처럼 퍼지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비판적 사고는 집단의 압력 앞에 무력해졌을지 모릅니다. '다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이상하잖아?' 하는 생각은 개인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집단이 가진 편견과 혐오를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획일적인 사고'에 저항하라고 가르치지만, 현실에서는 그 반대의 압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런 '놀이' 속 혐오에는 '인지 왜곡' 또한 깊이 관여합니다. 인지치료의 대가 아론 벡은 개인이 현실을 비합리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인지 왜곡'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정 지역이나 집단에 대한 편견은 종종 '과잉 일반화'나 '흑백논리' 같은 인지 왜곡을 통해 강화됩니다. 광주라는 특정 지역을 향한 혐오 표현은, 그 지역의 복잡한 역사와 다양한 사람들을 보지 않고, 단 하나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뭉뚱그려 비난하는 전형적인 '과잉 일반화'의 산물입니다. '그들은 다 그래'라는 생각은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게 만듭니다.
'놀이'라는 이름표가 붙는 순간, 우리는 그 행위의 무게를 덜어내고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하지만 '놀이'는 본질적으로 상호 간의 즐거움을 전제로 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와 모욕을 주는 행위가 어떻게 '놀이'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폭력의 또 다른 얼굴일 뿐입니다.
필자는 얼마 전 한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어린 침팬지들이 장난을 치다가도 상대방이 아파하는 기색을 보이면 곧바로 장난을 멈추고 보듬어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심지어 동물들도 상대의 고통을 인지하고 반응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인간에게는 '공감'이라는 고귀한 능력이 있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능력 말입니다. '놀이'라는 이름으로 혐오를 소비하는 것은 이 '공감'의 능력을 스스로 퇴화시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별것 아닌 일'이라거나 '어려서 그렇다'는 말로 불편한 진실을 덮으려 합니다. 하지만 '놀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혐오가 결국 우리 사회의 건강한 관계를 좀먹는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스스로 '나는 과연 어떤 방어기제를 쓰고 있는가?', '내 생각 속에 어떤 인지 왜곡이 숨어 있지는 않은가?' 하고 자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놀이' 뒤에 숨은 우리의 그림자를 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