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이름의 그림자, 혹은 '익명'이라는 가면

한 고등학교 야구 경기에서 시작된 작은 구호가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파문으로 번지는 과정을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특정 지역과 아픈 역사를 비하하는 발언,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학교 앞에 놓인 근조화환을 학생들이 무너뜨리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일탈을 넘어, 인간 심리의 복잡한 단면들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왜 집단 속에서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될까요? 그리고 분노는 왜 때로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는 걸까요?
필자는 이 광경을 보며 '탈개인화'라는 심리적 현상을 떠올렸습니다. '탈개인화'는 개인이 군중 속에 있을 때 자신만의 정체성과 책임감을 잃고, 집단의 감정이나 행동에 휩쓸려 비이성적이거나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사회심리학자 구스타브 르 봉은 이미 19세기 말 군중의 심리를 분석하며 개인이 군중 속에서는 '익명성'과 '전염성', 그리고 '피암시성'을 띠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혹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에 흡수된 것처럼 행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이러한 탈개인화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평범한 학생들이 간수와 죄수 역할을 맡자, 간수들은 잔인하게 변했고 죄수들은 무기력하게 복종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야구 경기 중 부적절한 구호를 외치거나 근조화환을 넘어뜨린 학생들은 아마도 '우리'라는 집단 속에 용해되어 자신들의 행동이 초래할 파장이나 개인적인 책임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 같이 하는 행동인데 뭐 어때?' 혹은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들이 모여,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는 과감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이는 결코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심리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건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해당 학교 학생 전체에 대한 비난과 함께, 심지어는 사건과 무관한 학생들의 신상까지 털리는 '마녀사냥'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라는 또 다른 심리적 현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희생양 메커니즘'을 통해 공동체의 위기나 갈등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전가되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즉, 공동체의 불안과 분노가 특정 대상을 향해 폭발함으로써 일시적인 평화를 얻으려는 시도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겪는 집단적 분노와 좌절감, 그리고 과거의 상처가 이번 사건을 통해 특정 학생들에게 '투사'되고, 그들이 집단적 감정의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분노는 정당한 감정일 수 있지만, 그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향할 때 우리는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마치 끓어오르는 물이 주전자를 넘어 주변을 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정의로운 비난을 하고 있다'는 '인지왜곡'이 개입할 여지도 충분합니다.
필자 역시 젊은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다 같이' 하는 행동이라는 이유로 옳지 않은 일을 묵인하거나 동조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잘못인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지요. '우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 속에서, 과연 나의 '개인'은 어디에 있었는지, 나는 어떤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 오래도록 되뇌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모였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잃고 위험한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집단 속에서 나의 목소리를 내고, 나의 양심에 귀 기울이는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라는 이름 뒤에 숨은 '나'는 안녕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