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 탐욕, 합리화의 가면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정유사들이 특정 전쟁 발발 직후 14조 원에 달하는 가격 담합을 벌여 유가를 인위적으로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고 합니다. 혼란스러운 세계 정세 속에서 오히려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지적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며 필자는 문득 오래전 들었던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무릎을 심하게 다쳤던 적이 있습니다. 친구는 괜찮냐며 부축했지만, 필자는 아픔보다도 새로 산 바지가 찢어졌다는 사실에 화가 나 친구에게 소리쳤습니다. '네가 너무 빨리 달려서 내가 넘어진 거잖아!' 물론 필자 스스로 속도를 주체하지 못했음을 알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친구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훨씬 마음 편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스스로를 속이는 걸까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볼 심리 기제가 바로 '합리화'입니다. 합리화란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불안을 유발하는 자신의 행동, 감정, 생각 등을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하여 정당화하는 무의식적인 방어 기제입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여러 방어 기제 중 하나로, 자아가 현실의 고통이나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인 셈이지요. 마치 이솝 우화 속 여우가 먹을 수 없는 포도를 보며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욕망이나 실패를 다른 이유로 돌려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합니다. 정유사들의 담합 사례에서 우리는 어떤 합리화를 엿볼 수 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전쟁으로 인한 시장 불확실성 증대'나 '원자재 가격 상승 압박' 같은 외부 요인을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 추구를 정당화했을지 모릅니다. 시장의 논리라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며 스스로의 양심을 잠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자신들의 탐욕을 숨기려는 교묘한 심리적 조작이 숨어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합리화와 더불어 이번 사건에서 짚어볼 또 다른 심리 개념은 '인지왜곡'입니다. 인지왜곡은 개인이 현실을 부정확하게 해석하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인지치료의 대가 아론 벡은 사람들이 특정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정과 행동이 결정된다고 보았습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사람은 긍정적으로, 어떤 사람은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담합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한 정유사들의 경우, 그들은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을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로 인지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현실이나 사회적 책임감 같은 중요한 가치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오직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심각한 인지적 편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전쟁이 '정당한 이익 추구의 명분'으로 왜곡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지왜곡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이나 조직에서도 흔히 나타나며, 때로는 사회 전체에 큰 해악을 끼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유혹과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그럴듯한 변명으로 위안을 얻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필자 역시 나이가 들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도 여전히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경향과 마주하곤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심리적 방어 기제가 우리의 진정한 성장과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때때로 잔꾀를 부려 고통을 회피하려 하지만, 그 잔꾀가 결국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어떤 불편한 진실 앞에서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려 하고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과연 그것이 정직한 자기 성찰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저 마음이 만들어낸 '합리화의 가면'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