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사랑'은 방어기제가 될 수 있을까

자식의 죄를 덜기 위해 증거를 인멸한 경찰관 아버지를 처벌해야 할까. 최근 광주 여고생 살인사건 피의자의 아버지가 주요 증거물을 감추거나 폐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편에서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의 실현'이라는 법의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우리 안에는 얼마나 많은 '부모'가 살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부모의 마음'은 때로 어떤 길로 우리를 이끌까요?
이 사건을 접하며 필자는 인간 본연의 복잡한 심리를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불편하거나 위협적인 상황에 직면할 때, 자신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심리적 전략을 '방어기제'라고 부릅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안나 프로이트는 이러한 방어기제들이 자아가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동원하는 다양한 방법임을 설명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눈을 가리면 자신을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는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 사례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합리화'라는 방어기제입니다. 합리화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 동기 등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정당화하는 심리적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망친 학생이 "어차피 그 과목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어"라고 말하거나,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지 못하고 "그 물건은 사실 별로였어"라고 치부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 경찰관 아버지는 아마도 자신의 행동을 '자식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나 '부모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합리화했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그럴까요? 진정 자식을 위한 행동이었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불안과 죄책감을 감추기 위한 자기기만에 가까웠을까요? 합리화는 불편한 진실로부터 우리를 잠시 벗어나게 해주지만, 결국 현실을 왜곡하고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역기능을 합니다.
합리화와 더불어 '부정' 역시 강력한 방어기제입니다. 부정은 고통스럽거나 위협적인 현실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마치 위험을 감지한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는 것처럼, 우리는 때로 불편한 사실을 아예 인식에서 차단해 버립니다. 자식이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을 부정하거나,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파장을 부정하는 심리가 이 아버지에게 작동했을 수 있습니다. '내 자식은 그럴 리 없어', '나는 그저 내 자식을 도울 뿐이야'와 같은 생각은 현실의 냉혹한 무게를 견디기 어려운 순간에 우리를 지탱하는 일종의 환상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의 심리는 결국 더 큰 문제와 마주하게 만들 뿐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불편한 진실 앞에서 눈을 감아버릴까요?
우리 법에는 '친족 특례'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는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와 신뢰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특정 범죄에 대해 친족 관계일 경우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이라 할지라도, 가족이라는 원초적인 집단에 대한 인간의 깊은 '애착'과 '충성'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집단에 소속되어 안정감을 느끼고 성장합니다. 이러한 유대는 너무나 강력해서, 때로는 사회적 규범이나 윤리적 잣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랑'과 '충성'이 보편적인 정의와 충돌할 때, 우리는 깊은 혼란에 빠집니다.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부터가 '죄'일까요? 이 경계는 때로 무척 흐릿해 보입니다.
경찰관 아버지가 느꼈을 고통과 압박감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책임과 역할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맹목적인 '부정'이나 '합리화'로 변질되어 정의를 가로막는 행위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이며, 어떤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진정한 사랑은 때로 진실을 직시하는 용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