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7월 14일 화요일
발행 2026-07-13
경향 사회

‘AI 안경’이 보여준 ‘쉬운 길’의 환상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기. 지난 5월, 한 40대 남성이 국가기술자격 시험에 응시하며 반입이 금지된 'AI 안경'을 사용해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감독관의 눈썰미에 발각되어 결국 검찰에 약식기소된 이 사건은 우리에게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왜 그는 이토록 위험한 '쉬운 길'을 택했을까요?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어릴 적 시험지를 받아 들고 막막했던 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시험 점수가 곧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듯했던 시절,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얻고 싶었던 마음은 아마 그 40대 남성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방법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인간의 근원적인 '능력에 대한 믿음'과 '성취의 과정'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살펴볼 개념은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제시한 '자기효능감'입니다. 자기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개인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시험을 예로 들자면, '내가 공부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자기효능감이죠. 이 믿음이 높은 사람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도 좌절하기보다 노력을 통해 극복하려 합니다. 반면 자기효능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에, 노력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쉽게 포기하거나, 혹은 외부의 도움이나 '꼼수'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아마도 AI 안경을 통해 부정행위를 시도했던 그 40대 남성에게는, 스스로의 힘으로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이 충분치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 부족을 인정하고 불안해하기보다, 기술의 힘을 빌려 그 불안을 회피하려 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것은 '지연된 만족'입니다. 이는 당장의 작은 보상보다는 미래의 더 큰 보상을 위해 인내하고 기다리는 능력을 말합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월터 미셸 교수가 진행했던 '마시멜로 실험'은 이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주고 15분을 기다리면 하나를 더 주겠다고 했을 때, 기다린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학업 성취도나 스트레스 대처 능력 면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였다는 연구는 유명합니다. 시험공부는 전형적인 '지연된 만족'의 과정입니다. 당장 놀고 싶은 욕구를 참고 책상에 앉아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시험 합격이라는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 안경은 이러한 '지연된 만족'의 과정을 건너뛰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게 만듭니다. 땀과 노력이 배제된 '쉬운 길'은 분명 달콤한 유혹이지만, 과연 그 만족이 진정한 성취감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유혹과 '쉬운 길' 앞에 놓이게 됩니다. 때로는 지름길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길이 우리 내부의 중요한 능력을 약화시키기도 합니다. AI 안경을 쓴 40대 남성의 이야기는 단순한 부정행위 사건을 넘어, 우리 사회가 개인의 '자기효능감'을 어떻게 키워주고 '지연된 만족'의 가치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남깁니다. 진정한 성장은 외부의 도구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꾸준한 노력 속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성취는 '쉬운 길' 너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