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콜센터 노동자의 '심리적 소유감'

한 콜센터에서 고객으로부터 '칼 들고 찾아가겠다'는 협박을 받은 노동자들의 고통이 전해졌습니다. 원청인 정부 기관은 이 문제에 대해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문득 '안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안전은 어떤 의미일까요? 단순히 물리적인 위협의 부재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필자는 문득 오래 전 상담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는 군 복무 중 선임으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렸고, 결국 자대 배치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탈영했습니다. 병역 기피라는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도망친 그에게 '군대'라는 공간은 물리적인 위협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불안정한 곳이라는 '심리적 위협'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우리는 어떤 공간이나 관계에 대해 '나의 것'이라는 안정감과 함께 그 안에서 안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곤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리적 소유감'이라는 개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어떤 대상이나 생각, 심지어는 특정 공간이나 관계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나의 것'이라는 감정을 말합니다. 단순히 법적인 소유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상태를 뜻하지요. 주로 조직심리학에서 팀워크나 직무 만족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어 왔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가꾼 정원에 대한 애착, 혹은 내가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에 대한 몰입감이 바로 그런 '심리적 소유감'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안전한 근무 환경'은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선 '심리적 소유감'의 대상일 것입니다. 매일같이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 위협받을 때, 그들은 단순히 임금을 받는 공간을 넘어 자신의 안전과 존엄성이 침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새들이 둥지를 잃은 것처럼, 자신의 삶의 터전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심리적 소유감'은 무너져 내립니다. '내 일터는 안전할 거야'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흔들리는 것이죠. 이러한 '심리적 소유감'의 훼손은 깊은 무력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소식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또 다른 지점입니다. 바로 '원청 기관은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이는 어쩌면 '귀인 오류'와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귀인'이란 어떤 사건이나 행동의 원인을 추론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성격이나 태도 같은 내적 요인에,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때는 상황 같은 외적 요인에 더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를 '기본적 귀인 오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원청 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도 '개인의 문제'나 '일부 고객의 일탈' 정도로 치부하고 싶은 유혹이 있을 것입니다. '콜센터 노동자 개개인이 더 잘 대처했어야 했다'거나, '그 고객은 원래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원인을 돌려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간과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치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탓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책임이 없다, 문제는 저기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문제 해결의 기회는 사라집니다. 그들은 어쩌면 자신들이 '시스템적 안전망'을 제공해야 할 주체임을 잊고, 문제를 외부로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귀인 오류'는 결국 노동자들에게 더욱 깊은 고립감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조직의 일원으로서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죠.
필자 또한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심리적 소유감'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땅, 우리가 속한 공동체, 우리가 나누는 관계 속에서 '이것은 나의 안전한 공간이다'라는 믿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마도 서로의 '심리적 소유감'을 지켜주기 위한 노력이, 우리 사회의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누군가의 안전에 대한 '심리적 소유감'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그저 방관하기보다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귀 기울이는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니까요.
함께 귀 기울이는 용기, 우리 모두의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