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상실 속, 우리는 왜 스파이더맨에게 공감할까?
새롭게 개봉한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피터 파커가 사랑하는 연인 MJ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채 홀로 남겨지는 설정은, 영웅의 숙명이자 감당해야 할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어쩌면 스파이더맨의 이 고독은 우리 안의 깊은 외로움과 맞닿아 있기에 더욱 공감이 가는 것 아닐까, 필자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고독한 영웅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는 걸까요? 그 답은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세 가지 심리적 욕구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바로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서 말하는 '자율성', '유능감', 그리고 '관계성'입니다. 이 이론을 제시한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은 이 세 가지 욕구가 충족될 때 인간은 내재적 동기를 느끼고 심리적 안녕감을 경험한다고 말합니다.
영화 속 피터 파커의 상황을 한번 떠올려 봅시다. 그는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하겠다는 '자율적' 선택을 했습니다. 스파이더맨으로서 악당과 싸우고 사람들을 돕는 일련의 과정은 그의 '유능감'을 확인시켜 주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가장 중요한 '관계성'을 상실했습니다. 그를 알고 사랑하던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다는 것은, 한 사람의 존재가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지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 없이 홀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 듯한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 내가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 어떤 물리적 고통보다 더 큰 내면의 상처를 안겨주는 일일 테지요. 이토록 중요한 욕구가 상실되었을 때,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다시 찾아 나설 수 있을까요?
어쩌면 피터 파커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자율성'을 다시금 확인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성'을 재정립하려 노력하는 듯 보입니다. 기억을 잃은 MJ를 멀리서 지켜보며 '관계성'에 대한 갈망을 느끼면서도, 그녀의 안전을 위해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모습은 영웅으로서의 '유능감'을 유지하려는 동시에 '자율적'인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겪는 상실의 아픔과도 닮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는 그 관계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그와의 추억 속에서 나의 일부를 발견하곤 합니다. 이런 감정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일깨워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자 존 보울비(John Bowlby)의 '애착 이론'에서 보듯이,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안정감을 느끼며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필자 역시 때때로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서 나의 존재가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나를 기억하는 방식이 달라지거나, 때로는 잊혀진다는 사실 앞에서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억의 유무를 떠나, 우리가 다른 이들과 맺었던 '관계' 자체가 우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임을 깨닫는다면, 고독 속에서도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스파이더맨이 홀로 고독과 맞서 싸우며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듯이, 우리도 상실과 고독 속에서 자신의 '자율성'과 '유능감'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관계성'을 찾아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기억 너머의 고독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나아가야 할까요? 아마도 그 해답은 스스로의 선택을 믿고, 관계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는 과정 속에 있을 것입니다.
기억의 유무를 넘어, 우리를 지탱하는 관계의 의미를 다시금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