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이름표를 달아주는 시간

암 투병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덤덤히 보내드렸다가, 4년 뒤 무기력감을 느낀 남성의 이야기가 최근 한 책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투병한 1년 반 동안 '단단하고 강한 아들'이 되고자 버텼던 후과가 온 것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지요. 별 감정 없이 지나갔던 사건이 나중에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거나 생각지도 못한 감정으로 되살아나는 경험,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이 미묘한 현상을 임상심리학은 어떻게 들여다볼까요?
필자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먼저 '감정 세분화'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감정 세분화란 자신의 감정을 단순히 '좋다', '나쁘다'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실망스럽다', '불안하다', '씁쓸하다', '기대된다'처럼 좀 더 구체적이고 미묘하게 구분하고 명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아프다'가 아닌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 어렵다' 등으로 상세히 듣고 진단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겠지요. 심리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은 감정을 세분화하는 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정서적 회복탄력성이 높고, 스트레스에 더 잘 대처한다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감정에 정확한 이름표를 달아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감정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첫걸음을 떼기 때문입니다. 이름 없는 감정은 마치 정체불명의 그림자처럼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만듭니다. 그러나 '아, 이것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구나. 그리고 그때 내가 보이지 않는 책임감에 짓눌렸었구나' 하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감정은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이해와 보살핌의 대상이 됩니다.
이 남성의 이야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심리적 기제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인지 부조화'입니다. 인지 부조화는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이 두 가지 이상의 모순되거나 불일치하는 신념, 태도, 행동을 동시에 가질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감을 의미합니다. 이 남성은 '나는 강한 아들이어야 한다'는 신념과 '깊은 슬픔과 무력감을 느낀다'는 내면의 현실 사이에서 큰 부조화를 겪었을 것입니다. 이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해 그는 아마도 자신의 슬픔을 억압하고 '덤덤한 모습'을 유지하는 행동을 선택했을 겁니다. 당장 눈앞의 불편감은 줄였을지 몰라도, 해소되지 않은 부조화는 결국 4년 뒤 '무기력감'이라는 형태로 터져 나온 것이지요. 마치 끓어오르는 물을 뚜껑으로 억지로 막아두면 언젠가 뚜껑이 날아가거나 냄비가 찌그러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인지 부조화와 마주합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는 다른 행동을 해야 할 때, 혹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이 불편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때 우리는 종종 현실을 왜곡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아예 불편한 감정 자체를 외면해버리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피는 결국 우리 마음속에 해소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 고통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이 남성처럼 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불편한 감정들과 어떻게 동행해야 할까요? 필자는 우리에게 '감정 명명'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호하고 뭉뚱그려진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그 감정을 통제하고 이해하는 데 한 발짝 다가선 셈입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슬픔이 아니라, 무력감과 분노였구나', '이 답답함은 사실 질투였구나' 하고 솔직하게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우리 안의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거나 억누르려 하기보다,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이름을 불러주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도 우리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복잡한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을 것입니다.
이름 붙여진 감정은 우리 마음의 나침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