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8월 1일 토요일
발행 2026-07-31
경향 사회

내 몸의 데이터, 누가 주인일까

내 몸의 데이터, 누가 주인일까
정부가 병원을 옮길 때마다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을 다시 찍는 관행을 줄이기 위해 의료영상정보 공유체계를 구축한다는 소식입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중복 검사로 인한 불편함과 의료비 부담을 덜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도움이 된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 기사를 접하며 우리가 우리의 '건강 데이터'에 대해 과연 얼마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심리적 소유감'(Psychological Ownership)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대상에 대해 법적 소유권이 없더라도, 스스로 그 대상을 '내 것'이라고 느끼는 심리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아이가 모래밭에서 만든 자신만의 성을 '내 성'이라고 외치거나, 오랫동안 사용해 온 물건에 애착을 느끼는 것과 비슷합니다. 기업 경영학에서는 직원들이 회사나 프로젝트에 대해 심리적 소유감을 가질 때 더욱 몰입하고 책임감을 느낀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건강 정보는 어떠할까요? 우리는 우리의 몸에서 나온 CT, MRI 영상이나 혈액 검사 결과 같은 데이터에 대해 과연 어떤 심리적 소유감을 느끼고 있을까요? 아마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의료 기록을 '병원의 것', '의사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병원을 옮기거나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마다 매번 같은 검사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저 시스템의 일부로서 수동적으로 요구에 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치 내 물건인데도 내가 직접 관리할 수 없고, 필요할 때마다 남에게 다시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소유감의 부재는 여러 문제를 낳습니다. 첫째, 자신의 건강 정보에 대한 이해와 관리 의지가 약해집니다. '내 것'이라는 인식이 없으니 굳이 들여다보고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둘째,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무력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내 몸의 정보인데 왜 이렇게 번거롭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관리되는지 의문을 갖게 되지만, 개인이 시스템에 저항하기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셋째, 결과적으로는 건강 관리의 주체성을 잃고 의료 서비스의 객체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이번 정부의 'QR코드 의료영상 공유' 시스템은 이러한 심리적 소유감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이용해 자신의 의료 영상을 손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비로소 내 건강 정보가 '내 손안에' 들어오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단순히 행정적인 편의를 넘어,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건강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과 통제권을 확보하는 경험을 제공할 것입니다. '내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우리는 건강 정보에 더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관리하려 들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보안 문제, 정보 활용의 범위 등 다양한 기술적,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환자 중심'이라는 철학, 즉 환자가 자신의 건강 데이터에 대한 심리적 소유감을 회복하도록 돕는다는 이념이야말로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마도 우리는 우리 몸의 정보를 단순히 질병 치료의 도구가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나 자신'의 일부로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번 변화를 계기로,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건강 데이터에 대한 진정한 주인이 될 준비가 되었는지 자문해볼 때입니다. 결국 우리의 건강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의 것입니다. '내 것'이라는 마음이 건강의 첫걸음이 아닐까요?
나의 건강, 주체적으로 돌보고 있나요?
경향 문화

'씩씩함'이라는 가면 뒤의 진짜 얼굴

'씩씩함'이라는 가면 뒤의 진짜 얼굴
매체에서 활약하는 여성 중식 셰프들을 향해 '중식계는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여성 셰프들이 저리도 씩씩한가'라는 질문이 쏟아진다는 기사입니다. 여성 셰프들이 보여주는 '씩씩함'이 본연의 모습인지, 아니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인지 묻는 이 질문은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보편적인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기사를 읽으며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는 자신의 저서 '관리되는 마음'(The Managed Heart)에서 감정노동을 '조직이 원하는 감정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관리하는 행위'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넘어, 특정 감정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고 표현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항공기 승무원의 한결같은 미소, 콜센터 상담원의 침착한 응대 등이 대표적인 감정노동의 예시이지요. 중식계 여성 셰프들의 '씩씩함' 역시 이러한 감정노동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남성 중심적인 주방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여성은 약하다'는 편견에 맞서 '나는 씩씩하고 강하다'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매서운 불 앞에서 큰 소리로 주문을 외치고, 거친 농담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그들의 생존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보다는, 직업적 역할과 기대에 맞춰 감정을 '연기'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마도 이러한 '씩씩함' 뒤에는 보이지 않는 피로와 고통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이들은 엄청난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이는 번아웃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진짜 감정을 잊어버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가면'을 쓰고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면과 실제 얼굴 사이의 괴리는 커지기 마련입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무대 위에서 '감정노동'을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직장 상사에게는 예의 바른 모습으로, 고객에게는 친절한 모습으로, 때로는 가족에게는 강하고 든든한 모습으로 자신을 연기합니다. 하지만 그 연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져서 진짜 자신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타인의 '씩씩함'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헤아려보고, 동시에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과연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 한번쯤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면을 벗어던질 용기가 필요한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씩씩함은, 당신을 지켜주나요?
경향 문화

'능력 부족'이라는 이름의 귀인 오류

'능력 부족'이라는 이름의 귀인 오류
충주시 유튜브 채널의 '충주맨'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김선태 씨가 KBS 웹 예능 '돈선태 성공시대'에서 자진 하차하며 '단독 MC로 방송을 이끌어가는 것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일견 겸손한 태도로 비칠 수 있지만, 필자는 이 기사에서 우리의 심리가 어떻게 사건의 원인을 해석하는지, 즉 '귀인 오류'(Attribution Error)의 한 단면을 엿보게 됩니다. '귀인 이론'은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의 행동이나 사건의 원인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하는지를 다루는 심리학 분야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Fritz Heider)가 처음 개념을 제시한 이래, 에드워드 존스(Edward E. Jones)와 키스 데이비스(Keith Davis) 등이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를 통해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적 요인보다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 같은 내적 요인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시험에 실패하면 '게을러서'라고 생각하기 쉽지, '시험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거나 '집안에 힘든 일이 있었다'는 상황적 요인을 고려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우리는 타인의 실패를 내적 요인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실패에 대해서는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는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을 보이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충주맨' 김선태 씨의 경우에는, '사투리 논란'과 같은 외부적인 압박과 대중의 시선이 분명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하차 이유를 '능력 부족'이라는 내적 요인으로 귀인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자기 비하적 귀인' 혹은 '자기 방어적 귀인'의 역설적인 형태로 볼 수도 있습니다. 즉, 외부의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리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더 큰 상처를 피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충주맨'이라는 성공적인 '라벨링'이 김선태 씨에게 가져다준 압박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중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에게 '사투리 논란'과 같은 부정적 피드백은, '나는 늘 유쾌하고 완벽한 충주맨이어야 한다'는 자기충족적 예언을 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이럴 때 '능력 부족'이라는 내적 귀인은, 외부의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하고 통제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는 시도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마도 우리는 성공한 이의 작은 실수에도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실패의 책임을 오롯이 개인에게 돌리는 데 익숙해져 있을 것입니다. 김선태 씨의 '능력 부족' 고백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에게 부여한 '라벨'과 그로 인한 '기대'가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과 결과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운 귀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실패 앞에서 '모든 것이 내 탓'이라며 자책하는 대신, 외부 요인을 살피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질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김선태 씨의 용기 있는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귀인 오류'의 덫에서 벗어나 좀 더 현명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타인과 나에게, 더 너그러운 귀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