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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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8월 11일 화요일
발행 2026-08-10
경향 문화

'나만의 음악', 마음이 투자하는 '정체성'

'나만의 음악', 마음이 투자하는 '정체성'
### ‘나만의 음악’, 마음이 투자하는 궁극의 ‘정체성 자산’ **임상심리학자 진성오 박사** 제20회 경향실용음악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한 젊은 음악인들의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김건희, 이서율, 오영빈. 각기 다른 악기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제 마음에 묵직한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나만의 음악을 보여주고 싶었다.’ 수많은 경쟁자를 넘어 최고의 기량을 증명하는 자리에서, 그들은 왜 기술적 완벽함이나 화려한 기교가 아닌 ‘나만의 것’을 이야기했을까요? 무대 위에서 그들은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요? 저는 그 짧은 소감에서, 단순히 음악을 넘어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통해 구축하고자 하는 ‘정체성’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봅니다. 임상의로서 수많은 마음의 결을 들여다보는 저 역시, 젊은 날 세상이 권하는 악보와 다른 나만의 선율을 고집했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 한편이 아릿해집니다.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각자의 무대 위에 서 있는 걸까요?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진학, 취업, 관계 같은 거대한 선택부터 오늘 입을 옷, 점심 메뉴 같은 사소한 결정까지. 이 선택들이 단순히 손익계산서처럼 합리적으로만 이루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선택의 이면에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과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지향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를 흥미롭게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George Akerlof)와 레이철 크랜턴(Rachel Kranton)이 제시한 ‘정체성 경제(Identity Economics)’입니다. 그들은 인간이 금전적 이익 같은 외부 요인에만 반응하는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 정의하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행동하며, 때로는 상당한 경제적 손실까지 감수한다는 것이죠. 마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서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 행위가 당장 성적을 올려주거나 명문대에 보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다’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기꺼이 ‘비경제적’인 선택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처럼 크고 작은 ‘정체성 투자’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정체성 투자는 왜 그토록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인본주의 심리학의 거장, 칼 로저스(Carl Rogers)의 지혜를 빌려올 수 있습니다. 로저스는 우리 내면에 ‘현실적 자기(Real Self)’와 ‘이상적 자기(Ideal Self)’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현실적 자기’란 경험을 통해 느끼는 ‘이게 진짜 나야’라고 속삭이는 내면의 목소리입니다. 반면 ‘이상적 자기’는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 부모가 기대하는 모습, 소위 ‘성공한 삶’의 표준처럼 외부에서 주입된 ‘~가 되어야만 해’라는 당위의 집합체죠. 로저스에 따르면, 이 두 자아 사이의 간극, 즉 불일치(incongruence)가 클수록 우리는 불안과 소외감,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콩쿠르 수상자들이 말한 ‘나만의 음악’을 찾는 여정은, 어쩌면 이 간극을 메우고 흩어진 두 자아를 하나로 온전히 꿰매려는 필사적인 노력일지 모릅니다. 세상이 환호하는 유행가(이상적 자기)를 연주하는 대신, 자신의 심장박동과 가장 닮은 리듬(현실적 자기)을 찾아 헤매는 것이죠. 물론 이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심리학적 개념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월터 미셸(Walter Mischel) 교수의 유명한 ‘지연된 만족(delayed gratification)’ 능력입니다. 그의 ‘마시멜로 실험’은 단순히 아이들의 인내심 테스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의 작고 즉각적인 보상’과 ‘미래의 더 크고 의미 있는 보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내적 투쟁에 관한 심오한 보고서입니다. 당장 대중의 귀를 사로잡는 커버 곡을 연주하면 즉각적인 박수와 환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눈앞의 달콤한 마시멜로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만의 프레이즈를 창조하기 위해 골방에서 수많은 밤을 새우는 걸까요? 그들은 눈앞의 마시멜로 대신, 언젠가 완성될 ‘나라는 이름의 교향곡’이라는 더 큰 정체성 자산을 선택한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안정적인 직업 대신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임상심리학의 길로 들어섰던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변에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라며 현실을 보라고 충고했죠. 경제적으로도 훨씬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정체성 경제’ 안에서 가장 수익률 높은 투자였고, 세상이 재단한 ‘이상적 자기’의 가면을 벗고 상처 입기 쉬운 ‘현실적 자기’의 맨얼굴과 마주하려는 용기였으며, 눈앞의 달콤한 마시멜로를 애써 밀어내는 고통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모든 이치를 머리로 분석하고 글로 쓰는 저조차도 때로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화음에 휩쓸려 저만의 작은 선율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더 쉽고 편한 길, 더 많은 박수를 받는 길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강력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나다운 선택이 가장 외로운 길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말입니다. 나만의 음악은 때로 불협화음처럼 들리고, 세상의 어떤 무대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독백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질문을 멈출 수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무엇에 가장 뜨거운 가치를 매기고 있습니까? 세상의 기준이라는 소음에 파묻혀, 당신만의 고유한 리듬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만의 고유한 리듬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