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8월 16일 일요일
발행 2026-08-15
경향 라이프

내 믿음이 만드는 기적, 플라시보 효과

내 믿음이 만드는 기적, 플라시보 효과
“이게 사카린 효과라면, 난 앞으로 사카린을 먹겠어.” 경향신문의 한 칼럼에 인용된 이 문장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시사하는 듯합니다. 실제로는 아무 효능이 없는 가짜 약이나 보조제를 먹고도 몸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일,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믿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흔들리는 것일까요? 그 이면에는 흥미로운 심리적 작동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필자 역시 어릴 적 배가 아플 때면 늘 어머니께 달려갔습니다. 어머니는 따뜻한 손으로 배를 쓸어주시며 '엄마 손은 약손'이라고 주문처럼 말씀하셨죠. 신기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통증이 가라앉는 듯했습니다. 그저 어린아이의 순수한 '믿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우리 마음의 또 다른 비밀이었을까요? 우리는 오늘 이 '플라시보 효과'를 통해 마음이 우리 몸과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함께 탐색해 보려 합니다. 아마 우리 각자의 경험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적'의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플라시보 효과는 의학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미스터리이자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기원은 고대 의학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는데, 특정 의례나 상징적인 치료법들이 실제 약효가 없었음에도 환자들의 상태를 호전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플라시보'라는 용어 자체는 라틴어로 '기쁘게 할 것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18세기 의학 문헌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특히 현대에 들어와 심리학과 뇌 과학의 발전과 함께 그 메커니즘이 깊이 연구되기 시작했습니다. 필자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극심한 긴장감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지인이 '특별히 긴장 완화에 좋은 차'라며 한약을 달여주었습니다. 맛은 썼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죠. 발표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며칠 뒤 지인에게서 사실 그 차는 일반 한약재였고, '특별히 좋다'는 말은 필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고백을 들었을 때의 놀라움이란! 효과를 기대하고 마셨던 '믿음'이 실제 신체적, 심리적 반응을 이끌어낸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뇌는 왜 이처럼 겉보기에 '합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걸까요? 우리는 왜 효능 없는 것에 기대를 걸고, 그 기대를 통해 실제 변화를 경험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인지적 구두쇠'와 '확증편향'이라는 두 가지 심리 개념을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지적 구두쇠'란, 우리의 뇌가 가능한 한 최소한의 인지적 노력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연구에서도 잘 드러나듯, 인간은 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성적인 존재'라기보다는, 효율성을 추구하며 인지적 에너지를 아끼려는 '인지적 구두쇠'에 가깝습니다. 복잡한 세상을 헤쳐나가려면 모든 정보를 꼼꼼히 따져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죠. 이런 '인지적 구두쇠'로서의 뇌는, 우리가 특정 보조제를 섭취하거나 특정 치료를 받을 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에 쉽게 의존하게 만듭니다. '이 비싼 보조제가 효과가 없으면 어쩌지?'라는 복잡한 고민보다는 '이 비싼 거니까 당연히 효과가 있을 거야!'라는 쉬운 결론으로 향하는 것이 뇌의 효율적인 작동 방식인 것이죠. 여기에 '확증편향'이 더해집니다. '확증편향'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가설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일단 '이 보조제가 나에게 좋을 것'이라고 믿기 시작하면, 뇌는 그 믿음을 확인해 줄 만한 신체적, 심리적 변화들을 찾아내고 증폭시킵니다. 예를 들어, 보조제를 먹고 평소보다 조금 더 개운함을 느꼈다면, 이를 '보조제 덕분'이라고 확신하는 식입니다. 반대로 별다른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안 좋다고 느끼더라도, '아직 기간이 짧아서 그렇겠지', '내가 뭔가 잘못했을 거야'라고 합리화하며 자신의 믿음을 유지하려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인지적 편향은 플라시보 효과가 발현되는 강력한 심리적 기반이 됩니다. 우리의 뇌는 '믿음'을 통해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고, 그 믿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보를 처리하며, 결국에는 실제 신체 반응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내 믿음'이 만드는 기적, 플라시보 효과는 단순히 가짜 약의 효능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기대'와 '긍정적 믿음'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외부의 완벽한 해결책만을 찾아 헤매지만, 어쩌면 그 답은 '내 안의 믿음'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진정으로 믿음을 부여하는지,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 미치는지 한 번쯤 성찰해 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믿음의 힘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매일 작은 기적들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믿음의 힘이 우리 삶에 어떤 기적을 선물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