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유혹과 '내면의 트로피'

최근 부커상 수상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인터뷰 기사를 접했습니다. 그녀는 문학을 '거칠고 통제할 수 없는 본능'이라 표현하며, '비록 시장이 원치 않더라도 자신만의 트로피를 들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짧은 문장 속에서 필자는 우리 시대 많은 이들이 겪는 고민의 본질을 보았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화려한 외부의 시선보다 내면의 진실한 가치를 따르는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이 질문 앞에서 필자는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안의 '내면의 트로피'를 찾아보려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그중에서도 직업이나 삶의 방향을 결정할 때, 외부의 기대와 내면의 갈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정적인 직업',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같은 외부적 가치는 종종 우리의 시야를 가리곤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한 깊은 갈증을 느낍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인 이득을 넘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경제학자 조지 아컬로프와 레이첼 크랜튼은 사람들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특정 직업이나 활동을 선택하는 경향을 설명하며 '정체성 경제'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사회적 범주, 즉 직업, 성별, 인종 등에 따라 적절하다고 여기는 행동을 할 때 심리적 만족감, 즉 효용을 얻는다고 보았습니다. 아룬다티 로이 작가의 말은 이러한 '정체성 경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시장의 요구, 즉 외부의 경제적 논리를 따르기보다 '문학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요구하는 '거칠고 통제할 수 없는 본능'에 충실할 때, 비로소 진정한 '트로피'를 얻을 수 있다는 통찰이지요. 이는 외부의 보상이나 인정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기준에 따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가치일 것입니다.
이러한 '내면의 트로피'를 추구하는 동기는 심리학에서 '내재적 동기'라고 불립니다. 내재적 동기는 외부의 보상이나 처벌 없이, 활동 그 자체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은 자기결정성 이론을 통해 인간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 심리적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 욕구들이 충족될 때 내재적 동기가 강화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그저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모습이 바로 내재적 동기의 순수한 발현입니다. 그러나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점차 '외재적 동기', 즉 돈, 명예, 타인의 인정과 같은 외부 보상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물론 외재적 동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내재적 동기를 압도하게 되면 우리는 점차 자신의 활동에서 진정한 의미와 즐거움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아룬다티 로이 작가가 말하는 '통제할 수 없는 본능'은 바로 이 내재적 동기의 강력한 힘을 보여줍니다. 문학이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의미와 만족감이 시장의 논리나 외부의 평가보다 우선한다는 것이지요. 필자 역시 임상심리학자로서의 길을 걸어오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때로는 더 안정적이거나 경제적으로 유리해 보이는 다른 선택지 앞에서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돕는다는, 이 일 자체에서 오는 깊은 만족감과 의미가 필자를 이 길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것이 필자에게는 '내면의 트로피'였던 셈입니다.
우리 안에는 누구나 자신만의 '거칠고 통제할 수 없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직업이 될 수도 있고, 취미가 될 수도 있으며, 혹은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관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본능의 목소리를 얼마나 잘 듣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외부의 시선과 보상에만 매몰되어 정작 우리 내면의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외부의 화려한 트로피가 아닌, 자기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증명하는 '내면의 트로피'가 필요합니다. 그 트로피를 찾는 여정은 때로는 외롭고 힘들겠지만, 그 과정 자체가 우리를 더욱 단단하고 진실한 존재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잠시 멈춰 서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면의 트로피는 외부의 박수보다 깊은 울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