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까지 사생활 폭로전이 이어지는 사이버레커 사건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줍니다. 인기 유튜브 채널에서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이 마치 하나의 콘텐츠처럼 소비되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접하며 필자는 우리가 '타인의 고통'이라는 상품에 왜 이리 쉽게 지갑을 여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물론, 사이버레커들은 자신의 행위를 '공익'이나 '진실 추구'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조회수와 금전적 이득, 그리고 대중의 관심이라는 강력한 보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체성 경제'라는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조지 애컬로프와 레이첼 크랜튼은 '정체성 경제'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소비하고 생산하는지가 자신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이버레커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진실을 폭로하는 자', '대중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자'로 구축하려 하고, 이를 소비하는 이들은 특정 정보를 접함으로써 자신이 '깨어있는 시민'이거나 '내부 정보를 아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느끼는 듯합니다. 결국, 타인의 사생활을 상품화하고 소비하는 과정이 굳건한 경제적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침해당하는 것은 피해자의 '자기결정권'입니다. 자기결정이론은 인간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 심리적 욕구를 타고난다고 봅니다. 이 중 '자율성'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선택하고자 하는 욕구를 의미하는데, 사이버레커에 의해 사생활이 무단으로 폭로되는 순간 피해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 은밀한 영역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그로 인해 사회적 관계는 물론 직업적 유능감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지요. 마치 동물원의 동물처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관찰되고 평가받는 상황 속에서, 피해자는 극심한 무력감과 심리적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입니다.
필자는 예전에 상담실에서 한 내담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담자는 직장 내 소문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는데, 그 소문은 사실과 무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내담자는 '필자가 무슨 옷을 입고, 어디서 누구와 밥을 먹는지는 필자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 왜 남들이 필자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려 드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 분노 속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겼다는 깊은 좌절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이버레커 사건의 피해자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의 주인이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흥미와 이득을 위해 그 주권을 빼앗기는 경험은 인간에게 가장 큰 심리적 폭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왜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통해 즐거움을 얻으려는 것일까요? 아마도 자신의 삶에서 충족되지 않는 욕구를 타인의 자극적인 삶을 통해 대리 충족하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혹은 타인의 추락을 보며 상대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안심하려는 무의식적인 기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음증 경제'의 유지는 결국 우리 모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갉아먹는 행위임을 우리는 인지해야 합니다.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소비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때, 우리 자신의 삶 또한 언제든 타인의 콘텐츠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타인의 아픔을 소비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씨앗을 뿌리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씨앗은 과연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결정'이며 건강한 '정체성'을 구축하는 길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우리의 마음은 안녕한가?
경향 사회
쉼이 필요한 우리에게, '세발서점'의 의미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도심을 벗어나, 속초 해변의 '세발서점'에서 파라솔 아래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필자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디지털 기기에서 잠시 눈을 떼고, 책장을 넘기며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아마도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고자 하는 우리 마음의 간절한 소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늘어지는 시간'이 왜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회복탄력성'과 연결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회복탄력성은 개인이 스트레스나 역경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거나 더 나아가 성장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참고 견디는 것을 넘어, 유연하게 대처하고 적응하는 힘이지요. 마치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회복탄력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긴장하고 달리는 것만큼이나 '충분히 쉬고 회복하는 시간'이 필수적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무한정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으며, 반드시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속초 '세발서점'의 풍경은 의식적으로 '지연된 만족'을 선택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당장 눈앞의 스마트폰 알림이나 인스턴트 콘텐츠의 자극적인 즐거움 대신,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책을 읽는 행위는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끝에는 단기적인 만족을 넘어선 깊은 평온과 성찰이 기다리고 있지요. 마치 숲속을 걷는 사슴처럼, 급하지 않게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순간을 통해 우리는 내면의 평화를 되찾고, 복잡한 생각의 엉킴을 풀어낼 수 있습니다.
필자 역시 바쁜 일정 속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동네 작은 서점을 찾곤 합니다. 책 한 권을 고르는 데 한참을 보내고,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몇 페이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숨 고르기'를 하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된 회복 탄력성을 일깨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지친 마음을 어딘가에 '기꺼이 늘어뜨려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큰 위로를 받습니다. '세발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회복탄력성을 위한 작은 오아시스인 셈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잠시 멈춰 서서 '늘어질' 수 있는 자신만의 '세발서점'이 필요합니다. 그곳이 실제로 서점이든, 혹은 조용한 공원 벤치든, 아니면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하는 나만의 공간이든 말입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생산적인 일일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늘어뜨릴 곳은 어디인가요?
한겨레 사회
AI 시대, 우리의 '자기효능감'은 어디로 향하는가?
AI가 쇼트드라마를 만들고,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제는 인간이 하던 창작의 영역마저 AI가 대체할 수 있다는 소식에, 우리는 경이로움과 동시에 깊은 불안감을 느낍니다. '과연 인간만의 자리는 어디인가?', '필자의 직업은 안전한가?' 하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이런 불안감의 기저에는 '자기효능감'의 위협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합니다.
'자기효능감'은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가 제시한 개념으로, 어떤 특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개인의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감과는 다릅니다. '필자는 잘 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이 일을 해낼 능력이 있다'는 구체적인 능력에 대한 신뢰입니다. 이 자기효능감이 높을수록 우리는 더 어려운 목표에 도전하고,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끈기 있게 노력하게 됩니다. 반대로 자기효능감이 낮아지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필자는 어차피 안 될 거야'라고 지레 포기해버리기 쉽지요.
AI의 등장은 많은 이들의 자기효능감에 큰 도전을 던지고 있습니다. 필자 역시 가끔은 'AI가 필자의 상담 능력까지 대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찔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믿었던 창의성, 공감 능력, 문제 해결 능력까지 AI가 흉내 내거나 능가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자신의 유능감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필자가 하는 일이 과연 가치 있는가?', '필자가 가진 기술이 미래에도 유효할까?' 하는 질문은 우리의 자기효능감을 뿌리째 흔들 수 있습니다. 마치 동굴 속 박쥐가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은 것처럼,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에 우리 인간의 자기효능감을 지키는 방법은 분명 존재합니다. 첫째, AI를 '경쟁자'가 아닌 '도구'로 인식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AI가 할 수 있는 일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구분하고, AI를 활용해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공감'과 '연결'이라는 인간 고유의 강점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타인의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창출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자신의 강점을 재정의하는 노력이 자기효능감을 유지하는 핵심입니다.
필자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삶의 의미를 함께 찾아가는 임상심리학자의 자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인간에게서 위로와 공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AI 시대는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 안에서 그 답을 찾아갈 기회를 제공하는 듯합니다. 우리의 자기효능감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우리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새로운 파트너로 AI를 바라볼 때, 우리는 이 불안의 시대를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