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8월 20일 목요일
발행 2026-08-19
경향 사회

‘선한 의도’가 ‘번아웃’이 되는 길

교육감들이 내놓은 새로운 정책들이 현장 교사들에게 오히려 큰 ‘일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인공지능 교육, 기초학력 책임 교육, 학생 마음건강 지원 등 언뜻 들으면 모두가 환영할 만한 정책들이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 적용될 때는 또 다른 고충을 낳는다는 것이지요. 필자는 이 기사를 접하며, 때로는 가장 선한 의도가 가장 큰 부하를 안겨줄 수 있다는 인간 심리의 아이러니를 떠올렸습니다. 모든 정책에는 그것을 수행할 사람들의 마음과 몸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종종 그 부분을 간과하는 듯 합니다.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분명 교육 현장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현장 교사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특히 교사라는 직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의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주고 학부모와 소통하며, 때로는 행정 업무까지 처리해야 하는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특정 정서를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흔히 ‘감정노동’이라고 부릅니다. 감정노동은 미국의 사회학자 알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가 연구한 개념으로, 직업상 요구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누르거나 가장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비행기 승무원이 불친절한 승객에게도 미소를 지어야 하거나, 콜센터 직원이 격앙된 고객의 불만을 침착하게 응대해야 하는 상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정책이 내려와 업무가 가중되고 심적으로 지쳐도, 학생들 앞에서는 여전히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불안과 피로를 감추고 능숙한 전문가의 가면을 쓰는 것이지요. 이러한 감정의 불일치가 지속되면 내면의 에너지는 빠르게 소진되고, 결국 ‘번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 부담’은 왜 그렇게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걸까요? 단순히 업무량이 늘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필자는 그 이면에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고 봅니다.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이 제시한 ‘자기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은 인간에게 세 가지 핵심적인 심리적 욕구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바로 ‘자율성’, ‘유능감’, 그리고 ‘관계성’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고 느낄 때(자율성),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을 때(유능감),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연결을 맺고 있다고 느낄 때(관계성), 우리는 내적으로 동기 부여되고 행복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새로운 정책이 현장에 내려올 때, 교사들은 이 세 가지 욕구 중 하나 이상을 침해당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정해진 지침에 따라야만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교육 철학이나 방식이 존중받지 못하면 ‘자율성’이 위협받습니다. 익숙하지 않거나 준비되지 않은 분야의 업무가 갑자기 주어지면 자신의 ‘유능감’에 의심을 품게 됩니다. 또한 늘어난 업무로 인해 동료 교사들과 소통할 시간이 줄어들거나, 학생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되면 ‘관계성’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심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정책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영혼을 갉아먹는 ‘부담’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특히 교육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이해와 교감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정책을 설계하는 이들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단순히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역량을 발휘하고, ‘유능감’을 느끼며, 학생들과 ‘관계 맺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선한 의도는 그저 또 하나의 ‘감정노동’과 ‘번아웃’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선한 의도가 항상 선한 결과를 낳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 길에 놓인 '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