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론'에 갇힌 우리, '자기결정성'을 찾아서
이직, 결혼과 같은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서, 혹은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쳤을 때 우리는 종종 '사주'라는 이름의 길잡이를 찾곤 합니다. 용하다는 역술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요즘은 인공지능에 미래를 묻는 이들도 늘어났다는 기사를 접하며 필자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때로는 희망적인 결과를 얻지만, 가끔은 저주 같은 풀이에 '내 팔자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우리 마음의 풍경이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자신의 삶을 외부의 '운명'에 맡기고 싶어 할까요? 필자 역시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불안감에 휩싸여 '혹시 내 운이 좋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타로점을 본 적이 있습니다. 결과가 좋으면 안도하고, 나쁘면 며칠간 그 생각에 갇혀 지내던 경험은 비단 필자만의 것은 아닐 겁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귀인 오류'와 연결되어 있을 듯합니다.
'귀인 오류'란 간단히 말해, 어떤 사건의 원인을 추론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체계적인 편향을 의미합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Fritz Heider)가 처음 제시하고, 이후 버나드 와이너(Bernard Weiner) 등이 확장한 이 개념은 우리가 특정 행동이나 사건의 원인을 '내부적 요인' (성격, 노력 등)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외부적 요인' (상황, 운 등)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경향성을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 팀이 이기면 '선수들이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라며 내부 귀인을 하고, 지면 '심판이 편파적이었다'거나 '운이 없었다'며 외부 귀인을 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사주나 운명론에 기댈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의 삶에서 벌어진 부정적인 사건들을 '팔자 탓'이라는 외부 귀인으로 돌리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당장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안의 힘을 잠식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팔자 탓'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어떻게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이 제시한 '자기결정이론'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이 이론은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본 심리적 욕구, 즉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율성'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자유를 느끼는 것, '유능감'은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느낌, 그리고 '관계성'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소속감을 의미합니다. 사주에 갇혀 나의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잃게 됩니다. 또한, 운명 앞에서 무기력해지면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유능감'마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물론, 인생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변화를 만들고 성취를 이뤄낼 기회마저 놓치게 됩니다. 마치 좁은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넓은 초원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필자 역시 한때는 내향적인 성격을 탓하며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내향성'이라는 기질이 나를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자유를 느꼈습니다. 나의 '팔자'가 나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과 '노력'이 나를 만들어간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운명론'에 기대는 것은 잠시의 위안을 줄 수 있지만, 결국 우리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타고난 팔자'가 아닌,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이라는 관점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써내려갈 때가 아닐까요?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센 사람'입니다.
당신의 '팔자'는 당신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임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