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8월 26일 수요일
발행 2026-08-25
경향 문화

AI가 만든 '진짜', 우리의 뇌는 어디로?

고요한 숲속, 한 남자가 커다란 나무뿌리에 기대 눈을 감고 있다. 언뜻 실사 영화처럼 자연스럽지만, 화면의 질감에 위화감이 감돈다. 필자는 이 문장을 읽으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많은 것들이 과연 '진짜'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필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여행 사진 한 장. 너무나 완벽한 구도와 색감에 감탄하며 '나도 저곳에 가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사진 속 인물의 표정이나 배경의 미묘한 그림자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결국, AI가 생성한 이미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허탈감이란. 아름다움을 넘어선 완벽함이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러니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이미지나 영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기 위해 한 번 더 고개를 갸웃거려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만의 틀로 해석하고 때로는 왜곡합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인지왜곡'이라 부르지요. 인지치료의 대가인 아론 벡(Aaron Beck)은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부정적 사고들이 어떻게 현실을 비합리적으로 해석하게 만드는지 밝혀냈습니다. '흑백논리', '과잉 일반화', '파국화' 등 다양한 인지왜곡은 우리가 세상을 더 비관적으로 보거나, 특정 상황에 대해 비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게 만들곤 합니다. 마치 오래된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렌즈가 흐릿하면 흐릿한 대로, 색이 바래면 바랜 대로 세상을 '진짜'라고 믿어버리는 것이지요. AI가 만들어내는 '너무나 완벽한' 이미지들은 우리의 인지 필터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실제 세상의 불완전함과 예측 불가능성을 배제한 채, 오직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AI의 '새로운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에 대한 인지 체계가 서서히 변형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뇌에는 쾌락과 동기를 관장하는 강력한 '보상회로'가 존재합니다. 특정 행동이 보상으로 이어질 때, 이 회로가 활성화되어 우리는 그 행동을 반복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B.F. Skinner)의 실험에서 쥐가 레버를 누를 때마다 먹이를 얻는 것처럼, 우리는 쾌락을 주는 자극에 쉽게 길들여집니다. SNS의 '좋아요' 알림이 울릴 때마다 느껴지는 작은 만족감이 대표적이지요. AI가 제공하는 맞춤형 '진짜'는 이 보상회로를 직접 공략합니다. 현실에서는 얻기 힘든 완벽한 경험, 이상적인 모습, 통제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며 우리의 뇌에 지속적인 쾌락 신호를 보내는 것이지요. AI가 만들어낸 세계는 우리의 욕망과 기대를 정확히 반영하여 '진짜'보다 더 매력적인 '진짜 같은'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는 우리가 점차 현실 세계에서 만족감을 찾기 어렵게 만들고, AI가 제공하는 가상 세계에 더욱 의존하게 만들 위험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선택의 역설'이 발생합니다. 수많은 완벽한 가상현실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불안감을 높인다고 말했습니다.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결국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에 후회와 불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AI가 제공하는 무한한 '진짜 같은'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진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불완전하고 때로는 고통스럽더라도, 예측 불가능하고 생생한 현실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성장과 관계의 의미를 간과하게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진짜'라고 정의해야 할까요? 우리의 뇌가 편안함과 쾌락에 이끌려 AI가 만들어낸 '진짜 같은' 가상 세계에 안주하게 된다면, 우리 삶의 주체성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아마도 '진짜'를 판별하는 능력보다, '무엇을 진짜로 믿을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결국, AI가 만들어낸 '진짜'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입니다.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불완전하지만 생생한 현실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 말입니다. 우리 각자의 현실은 AI가 결코 완벽하게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가치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진짜를 찾아가는 여정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