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9월 2일 수요일
발행 2026-09-01
경향 문화

내 얼굴을 훔친 '들쥐', 나는 누구인가?

최근 한 넷플릭스 시리즈가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들쥐'라는 제목의 이 드라마는 주인공의 얼굴, 주민번호, 지문까지 똑같은 존재가 나타나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충격적인 서사를 펼쳐 보입니다. 배우 류준열 씨가 1인 2역을 소화하며 '나와 똑같은 존재가 내 모든 것을 훔쳐간다'는 섬뜩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냅니다. 필자는 이 기사를 접하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이름, 내 얼굴, 내 기억, 내 관계, 내 직업, 내 소유물?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어떤 것일까요? 심리학자 하인츠 코헛(Heinz Kohut)은 우리가 '자기대상'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을 인식하고 유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자기대상은 문자 그대로 '자기(Self)'를 지탱하는 '대상(Object)'을 의미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직업적 성취나 사회적 인정 같은 외부적인 요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공감적인 반응, 이상화할 수 있는 인물, 또는 우리가 속한 집단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자존감을 유지하며, 내면의 응집력을 갖춥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자랑스러운 눈빛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느끼고, 예술가가 관객의 박수갈채 속에서 창작의 의미를 찾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자기대상들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다른 존재에게 도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자기대상들이 '들쥐'에게 빼앗기는 순간, 우리의 '자기'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됩니다. 마치 거울이 깨지거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과 같은 혼란과 공포를 느끼는 것이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자기대상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SNS에서 '좋아요'와 댓글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특정 브랜드의 소유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외부에 투사하고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재확인하는 과정을 필자는 '정체성 경제'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단순히 내면의 고유한 속성을 넘어, 외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비되는 일종의 '자본'처럼 기능합니다. 나의 학력, 직업, 소셜 미디어 팔로워 수, 심지어 나의 취향까지도 이 정체성 경제 속에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드라마 '들쥐'에서 주인공의 얼굴과 삶을 훔쳐간다는 것은, 그가 오랜 시간 축적하고 투자해 온 모든 '정체성 자본'을 한순간에 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쌓아 올린 명성과 관계, 심지어 자신의 기억까지도 부정당하며, 자신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는 현대인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심리적 혼란 중 하나일 것입니다. 영화 '페이스 오프'처럼 얼굴이 바뀌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종종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합니다. 직업을 잃었을 때,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 혹은 내가 믿었던 가치가 흔들릴 때 말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우리를 지탱하던 자기대상들이 사라지거나 변질되었음을 느끼고, 내면의 혼란을 겪습니다. 아마도 중요한 것은, 외부의 자기대상이 흔들리더라도 내면의 '자기'가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일 겁니다. 외부의 거울이 깨져도, 내 안의 거울은 여전히 나를 비출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우리는 외부 세계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내면 거울'을 닦아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외부의 평가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나 스스로에게 '괜찮다', '충분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들쥐' 같은 존재가 나타나 내 모든 것을 훔쳐가려 할 때도, '진짜 나'는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남아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진정한 '나'는 무엇으로 증명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