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 연구소 · my-mind.kr진성오 박사 칼럼

THE MIND GAZETTE

임상심리학자가 바라보는 오늘의 뉴스

2026년 9월 3일 목요일
발행 2026-09-02
경향 문화

'사랑'이라는 이름의 착각

최근 한 유튜버 출신 감독이 만든 저예산 영화 '옵세션'이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짝사랑이 '사랑해'라는 고백을 넘어 공포스러운 집착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섬뜩하게 그려내 많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순수했던 마음이 어떻게 상대에게는 숨 막히는 공포가 될 수 있었을까요?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며,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의 이면에 자리 잡을 수 있는 '마음의 덫'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중에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때때로 그 특별함이 지나쳐 상대방의 존재를 내 삶의 전부로 여기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통제하고 싶어지는 마음. 그것은 과연 진정한 사랑일까요, 아니면 자기만의 '환상'을 투영한 결과일까요? 아마도 후자에 가까울 것입니다. 임상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개념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인지왜곡'입니다. 인지왜곡이란 쉽게 말해,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인지치료의 창시자인 아론 벡(Aaron Beck) 박사가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하며 정립한 개념이지만, 이는 비단 우울증 환자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현실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영화 '옵세션' 속 '집착'은 이러한 인지왜곡의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준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나를 사랑할 거야', '저 사람 없이는 나는 행복할 수 없어', '저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와 관련이 있어'. 이런 생각들은 객관적인 증거 없이도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결국 상대방의 자유를 침해하고 공포를 유발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상대방의 무관심을 '밀당'으로 해석하거나, 거절을 '더 노력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식이지요. 이러한 왜곡된 인지는 결국 자신만의 '망상' 속에 갇히게 만들고,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합니다. 필자의 상담실을 찾아오는 많은 분 중에도 이러한 인지왜곡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직장 상사의 무표정한 얼굴을 '나를 싫어한다'는 증거로 단정 짓고 스스로 위축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친구의 무심한 한마디를 '나를 무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오랜 우정을 끊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지왜곡은 우리의 마음을 갉아먹고 관계를 망치며, 심하면 영화 속 '집착'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쉽게 현실을 오해하고,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걸까요? 아마도 복잡한 세상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시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도가 때로는 우리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칼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마치 한 권의 책과 같습니다. 그 책을 읽는 방식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는 항상 부족해'라고 읽으면 세상은 온통 실망스러운 일들로 가득 찰 것이고, '나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읽으면 세상은 기회와 희망으로 빛날 것입니다. 인지왜곡은 우리가 책의 특정 부분만 확대하거나, 없는 내용을 지어내서 읽는 것과 같습니다. 영화 '옵세션'은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며, 동시에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인지왜곡'의 그림자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습니다. 그 감정들이 때로는 우리 눈을 가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잠시 멈춰 서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과연 전부일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사랑이라 믿는 것이 혹시 상대방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간절한 바람이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마음속의 '착각'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내 마음의 착각을 들여다보는 용기.